움직이는 국가,멈춰버린 국가..⑫

▲조광한 경기도 남양주시장 사진=남양주시청
▲조광한 경기도 남양주시장 사진=남양주시청

이번에는 멈춰버린 국가로 스페인을 살펴보겠습니다. 스페인은 최초로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지만 다시 쪼그라들고 말았습니다. 그 중간에 스페인의 식민지 정복으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겪었던 고통과 희생을 한 편 추가해서 총 3편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스페인은 지중해 북서쪽 이베리아 반도의 약 86%를 차지합니다. 포르투갈이 14%로 서쪽에 있고 동쪽에는 프랑스가 있습니다. 면적은 남한의 5배가 약간 넘고, 2020년 1인당 GDP는 약 27,000달러입니다. 한국은 3만 1,637달러입니다. 세계 3대 테너 중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 전설적인 클래식 기타리스트 세고비아, 화가 피카소의 나라이고 투우, 플라멩코 춤,소설 돈키호테로 유명합니다.

이슬람세력을 몰아내는 국토회복전쟁인 레콩키스타를 약 800년 가까이 치르고 통일이 늦어져 최초의 제국인 포르투갈보다는 조금 늦게 해외 탐험에 나섰지만 아주 빠르게 포르투갈 세력을 뛰어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포르투갈에 비해 재물과 인력이 풍부한 강대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 제국은 수많은 탐험가들의 항해와 정복 전쟁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중 가장 크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2개의 항해 사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 또는 신대륙에 진출한 사건입니다. 이것은 스페인 역사상, 아니 세계 역사상 매우 중대한 항해 사건입니다.

레콩키스타가 마무리되고 통일된 1492년, 8월 3일에 이탈리아 사람인 콜럼버스는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받아 산타 마리아호 등 3척의 범선과 90명의 선원을 이끌고 스페인을 떠났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서쪽으로 항해해 동방, 즉 인도와 중국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지구는 둥글다.’는 것과 ‘서쪽으로 항해해 동방에 도착한다.’는 것은 하나의 가설일 뿐, 증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콜럼버스는 이 가설을 믿었고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9월 중순, 어렴풋이 넓고 푸른 초원이 보였고 육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지금의 미국 플로리다 남쪽의 서인도제도 부근에 해조류가 떠있는 것이었습니다.

조류의 흐름이 거의 없고 부유물이 많아 전진하기 힘든 그 해역을 어렵게 빠져나온 후에도 망망대해가 놓여있자 긴 항해에 지친 선원들은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확신을 가지고 선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해 1492년 10월 12일 새벽 2시쯤 달빛에 희미하게 보이는 모래언덕을 발견했는데 그 곳은 바하마 제도의 과니하니 섬이었습니다. 배 안은 기쁨과 환호로 서로 얼싸안으며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콜럼버스는 이 섬을 아시아의 일부로 생각해 ‘성스러운 구원자'라는 뜻의 산살바도르라고 이름 지었고 스페인의 영토로 선포해 39명이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이후 쿠바, 아이티 등 수많은 섬을 발견했습니다. 원하던 금과 은은 조금밖에 얻지 못했고, 원주민들이 기다란 나뭇가지로 들풀을 태워 연기를 들이마시는 독특한 관습을 유럽에 전했는데 이것이 담배입니다.

여왕에게 향료와 금광이 많다고 거짓말을 하고 4차례 항해를 했지만 결국 금은보화를 발견하지 못했고 여왕도 사망하자 왕실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도착한 곳이 동방의 어딘가라고 죽을 때까지 믿었습니다. 단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나온 것과 같은 대도시를 찾지 못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아메리카가 신대륙임을 밝혀낸 건 이탈리아 사람으로 후에 스페인 시민이 된 아메리고 베스푸치였습니다. 1503년 발간한 ‘신세계’라는 책에서 새로운 대륙임을 알렸고, 그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후 스페인은 아메리카에 대규모의 식민지를 건설하게 됩니다.

두 번째 중요한 항해 업적은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세계 일주입니다. 포르투갈 사람인 그는 1519년 9월 20일, 5척의 스페인 함대를 이끌고 브라질로 향했습니다. 포르투갈의 식민 활동으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서 온 노예 엔리케도 있었는데, 마젤란이 도중에 목숨을 잃어 세계 일주에 최초로 성공한 사람은 엔리케입니다.

브라질 해안에서 계속 남하하던 함대는 남아메리카 남단에서 서쪽으로 향한 좁고 긴 해협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마젤란 해협입니다. 좁고 구불구불하고 막힌 곳이 많은 550km의 해협을 빠져나오는데 한 달이 넘게 걸려 태평양에 진입했습니다.

함대는 5척 중 3척이 남았는데 1척은 좌초되었고 1척은 반란을 일으켜 돌아간 겁니다. 돌아간 선장은 마젤란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모함해 스페인에 남아있던 마젤란의 아내와 아이들은 국가의 보조금을 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태평양 항해는 80일 넘게 계속 됐고 선원들은 식량과 식수 부족으로 죽음과 싸워야 했습니다. 비스킷 부스러기에 톱밥을 섞어 먹거나 나무기둥의 부식을 막는 소가죽을 며칠씩 물에 불려 구워먹으며 버텼습니다. 과일과 채소를 먹지 못해 생기는 괴혈병으로 많은 선원이 이가 빠지고 온몸이 붓고 출혈이 일어나 죽었습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선원들은 사람이 살고 있는 작은 섬에 도착했습니다. 괌과 사이판과 여러 섬이 있는 마리아나제도였습니다. 재충전을 하고 다시 서쪽으로 항해해 200km 떨어진 필리핀제도에 닿았습니다.

1521년 4월 마젤란은 필리핀 부족 간의 전쟁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고, 남은 선원들은 하나만 남은 빅토리아호를 타고 1522년 9월 6일, 3년 만에 드디어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왔습니다. 출항 때 265명이던 선원은 겨우 18명만 남았습니다.

마젤란 탐험대를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가설이 사실로 증명된 것 입니다.

이러한 여러 탐험과 정복으로 스페인은 16세기 중후반에 북아프리카, 중앙아메리카, 브라질을 제외한 남아메리카, 필리핀까지 포함한 방대한 식민지를 구축했습니다. 1556년부터 1598년까지 약 43년 동안 재위한 펠리페2세 때가 최전성기로 7개의 바다를 지배하며 최초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어 황금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펠리페2세 말기부터 스페인은 기울기 시작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다음 편에 다루고,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으로 원주민이 입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다음 편에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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