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연 산림항공본부장

▲ 산림항공본부 고기연 본부장. 사진=산림항공본부
▲ 산림항공본부 고기연 본부장. 사진=산림항공본부

산불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매년 봄·가을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큰 산불이 발생하면 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남기고 숲 생태계에 오랫동안 영향을 주는 재해이다.

▲강원 고성·속초산불. 사진=산림항공본부
▲강원 고성·속초산불. 사진=산림항공본부

지난 2019년 4월 고성과 속초, 강릉, 동해 등 동해안 4개 시·군을 포함해 인제까지 휩쓴 대형산불은 초속 30m의 강한 바람이 야심한 시각을 틈타 삽시간에 2832ha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무려 축구장 3960여 개에 달하는 면적이다.

피해지를 복구하는 나무 심기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지만 식생과 경관이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데 20여 년이 필요하다.

예전의 야생동물들이 되돌아오는데 3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필자는 27년을 산림청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날씨가 건조해지고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은 산림공무원에게는 산불과 씨름해야 하는 숙명의 계절이다.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불 중 가을철에 평균 26.6건이 발생했다는 것이 산림청 통계이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68건으로 가을철 산불발생이 증가하는 추세이고 주요 원인은 입산자 실화로 전체의 34%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2월초 강원도 원주에 있는 산림항공본부로 이동한 필자는 이러한 봄·가을철 산불 위기상황을 항공차원에서 미리 대비하는 것이 주요한 임무이다.

▲진화용수(포소화약제) 투하장면. 사진=산림항공본부
▲진화용수(포소화약제) 투하장면. 사진=산림항공본부

본부는 47대의 중형, 대형, 초대형 산불진화헬기의 가동상태를 대형산불 위험시기에 맞추어 최적의 수준으로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다양한 헬기들의 정비수준을 고도화해 혹시 있을지도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외에도 최정예 지상진화 능력을 갖춘 공중진화대를 산불현장 최일선에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본 칼럼의 제목이 그런 측면에서 다소 의외이지 않은가?

국가기관 중 軍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헬기를 보유한 산림청의 헬기 운용기관의 관계자가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는 표제를 쓴다고 독자들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산불의 발생원인과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이해가 일면 갈 수 있겠다.

▲공중진화대 지상진화. 사진=산림항공본부
▲공중진화대 지상진화. 사진=산림항공본부

산불의 발생에는 세 가지 요인이 개입한다.

연료, 열(熱) 및 산소이다. 이를 흔히 산불의 3요소라고 하는데 이중 한 가지 요인이 없으면 산불은 발생하지 않는다.

필자가 1996년 고성산불 발생 이후에 진화대원들 양성교육을 한 적이 있다.

현장 경험이 많지 않았던 그 시절에 산불진화 기술을 이들 3요소를 중심으로 설명한 것이 지금도 생생하다.

산불은 열, 즉 담뱃불과 같은 화원(火源)이 숲에 떨어져서 시작한다.

예방차원에서 등산할 때 불 피우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이런 연유다.

담뱃불이 땅에 떨어져도 탈 것이 없으면 화재로 이어지지 않는다.

탈 수 있는 가연물질, 즉 숲의 마른 나뭇가지, 잎들을 제거하는 것이 산불이 났을 때 진화대원들이 주로 하는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산소이다.

무산소, 저산소 상태에서는 불이 나지도 않을뿐더러 난다고 해도 심각하지 않다. 산불현장에서 물을 뿌리거나 소화약제를 살포하는 것은 산소를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이론적인 설명을 했는데, 헬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타고 있는 산불에 있어 산소, 즉 공기를 제거하기 위하여 물이나 소화약제를 뿌리는 것이다.

현재 여건에서 헬기는 광범위한 산불현장에서 산소를 제거하는 역할에서 효과적이다.

▲공중진화대 지상진화. 사진=산림항공본부
▲공중진화대 지상진화. 사진=산림항공본부

그러면 남는 문제는 산불은 누가 진화하는가이다.

답은 하나의 주체가 아니라 여러 주체가 힘을 합쳐서 불을 끄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지상의 진화인력이다.

군사 작전에서 보병이 전투를 마무리하듯, 산불도 지상진화대가 마무리해야 완전한 진화를 이룰 수 있다.

아무리 헬기를 많이 투입한다 해도 완전 진화에는 어려움이 있다.

속된 말로 홍수가 날 정도로 물을 퍼붓지 않으면 불길을 잡기 어렵다.

헬기 운용도 효율적․전략적으로 해야 한다. 무한정으로 고비용 자원인 헬기를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야간에는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

그리고, 바람이 심한 경우도 이륙을 하지 못하기에 산불이 발생한다 해도 의존할 헬기는 없다.

헬기와 지상진화 인력의 적절한 조화만이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참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3월말과 4월초에 전국에서 산불이 50여건 발생한다고 가정하고, 동해안 지역에 발생한 것도 여러 건이 있다고 해보자.

헬기를 요구하는 곳에 원하는 대수만큼 보낼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대답은 자명하다. 민가와 시설을 위협하는 산불에 대응하기 위하여 하늘만 바라볼 수 없다.

현재의 여건에서 산불진화 헬기의 역할은 부각될 수 밖에 없다.

넓은 면적의 산불의 진화를 할 수 있고, 진화헬기는 발생 초기에 빠르게 험준한 산림지역에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요 시설이나 민가보호를 위하여 산불의 핵심지역을 집중 타격하는 것이 현재의 방법이다.

산불 극성기가 점차 다가오고 있다.

산불발생은 감소시킬 수 있어도 완벽하게 피할 수 없다.

지구온난화 추세에 따라 기상고온으로 발생여건은 악화하고 있다.

어차피 맞닥트릴 산불이라면 산불 진화주체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기구인 국제식량농업기구에서는 스마트 산림재해관리메카니즘 구축을 권고하고 있다.

산림청에서도‘K-산불방지대책’추진과 함께‘한국형 스마트산림재해관리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로 산림항공본부는 산불진화의 특성을 감안하면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

지상대원들의 헌신과 지역주민들의 협조가 필요한 산불조심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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