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국가, 멈춰버린 국가..19

▲조광한 경기도 남양주시장 사진=님영주시청 공보과
▲조광한 경기도 남양주시장 사진=님영주시청 공보과

이번에는 비교적 최근인 20세기 이후에 추락하고 멈춰버린 국가들 중에서 그리스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는 세계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찬란한 역사를 간직한 나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5백 년 전 무렵부터 민주정이 시작되었고, 그리스 신화는 유럽 문화의 모태가 되었으며,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 철학자들의 사상이 꽃을 피웠습니다.

남부 유럽에 위치한 그리스는 지중해와 접한 나라입니다. 면적은 대한민국보다 약 30%정도 크고 인구는 천만 명을 조금 넘습니다. 산토리니, 크레타, 사모스 등 아름답기로 유명한 섬들과 역사적인 유적이 많아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끊임없이 찾는 나라입니다.

역사의 자부심으로 가득하고 한 때 세계 2위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이 나라가 20세기 후반 아주 짧은 기간에 멈춰버린 국가가 되어버렸습니다.

1949년 내전이 끝난 이후 경제성장률은 연간 10%를 상회해 일본에 이어 세계 2위권이었으며, 이러한 성장세는 약 20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1980년대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었는데 당시 한국은 수천 불 수준이었습니다.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 그리스는 잘사는 나라였습니다. 1인당 GDP가 2011년까지 대한민국보다 높았습니다. 그러나 2012년에 그리스 22,172달러, 한국 24,359달러로 한국이 앞서기 시작했고, 그 후에도 그리스 경제는 계속 후퇴해 2020년 기준 17,676달러, 한국은 31,737달러로 격차는 더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그리스가 급격하게 몰락한 원인은 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무분별한 포퓰리즘, 그에 따른 과도한 국가부채의 증가, 그리고 낙후된 산업구조입니다.

먼저 무분별한 포퓰리즘을 살펴보겠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리스 비극의 주된 원인으로 어처구니 없는 복지 지출을 꼽고 있습니다. 1981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집권했고 2번에 걸쳐 약 11년 재임하며 나라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그는 취임 직후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주라”고 했습니다.

아르헨티나 페론 대통령의 “국민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십시오.”라는 말에서 빌려온 이 말은 무분별한 포퓰리즘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파판드레우 총리의 포퓰리즘은 그가 퇴임하고 약 20년 후 국가부도를 불러오게 됩니다.

그는 대학원까지 무상 교육, 무상 의료를 실시했습니다. 출근시간대 대중교통도 공짜, 65세 이상 무주택자에겐 한 달 약 50만 원의 월세를 지원했고, 취임 1년만인 1982년에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무려 45.9% 인상했습니다.

또, 공무원 일자리를 대폭 늘렸습니다. 1980년 공무원 수가 약 30만 명이었는데 취임 1년 만에 공공부문 임금총액을 약 33%늘렸고, 공무원은 계속 증가해 2010년 전체 취업자의 4분의 1인 약 85만 명에 달했습니다. 공무원은 한 달의 유급휴가를 받고, 오후 2시30분에 퇴근하고 58세에 정년퇴직하면 급여의 95%를 연금으로 받습니다.

두 번째, 이러한 무분별한 복지지출과 공무원 증원, 연금 확대 등은 빚을 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결국 국가부채가 폭증했습니다. 이러한 빚잔치는 인기영합주의인 포퓰리즘으로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980년 국가부채는 GDP대비 약 22.5%로 당시 영국이나 네덜란드의 절반 수준이었고 재정은 매우 건실했습니다. 그러나 파판드레우 집권 3년 만인 1984년에 40.1%로 두 배 가까이 뛰었고, 1993년에 100.3%로 늘어나며 부채의 늪에 빠졌습니다.

이에 더해 2008년 금융위기가 겹치자 유럽연합 EU와 IMF에서 2010년부터 3차례에 걸쳐 사상 최고인 약 370조 원의 구제금융을 받았습니다. 구제금융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요구했고,국민은 실업과 생활고에 내몰렸습니다. 2011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8%였고, 국민의 3분의 1이 빈곤층으로 전락했습니다. 평균 월급은 3분의 1로 줄었고, 거리에서는 연일 시위가 끊이지 않는 혼란이 이어졌습니다.

공무원 수와 연금을 축소하려 하자 공무원들은 강력히 반발해 시위를 이어갔고, 집권세력은 표를 얻기 위해 공공부문의 긴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자구책으로 항공사와 철도기업, 항만, 조선업 등의 국영 기업과 민간 기업들을 대대적으로 외국에 매각했지만 역부족으로 2015년에 국가부도를 선언했습니다. 2018년 국가부채는 GDP대비 184.8%로 폭증해 OECD 1위를 기록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인구의 약 5%에 해당하는 그리스 청년들 50만 명이 나라를 등지고 떠났습니다. 남아 있는 청년들은 부모의 연금에 기대어 살고, 2018년 청년 실업률은 39.4%로 최악이던 2012년의 55.2%보다는 낮아졌지만 여전히 EU에서 가장 높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산업구조에 있어 2차 산업인 제조업은 거의 없고 관광업에 과도하게 의존해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파판드레우 총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960~70년대까지는 2차 산업으로 자동차 산업과 제조업 기반을 가지고 있었지만 파판드레우 총리는 ‘비교우위론’을 주장하며 1차, 3차 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비교우위로 경쟁력이 있는 농어업으로 올리브유와 새우를 팔고, 관광업으로 돈을 벌자는 주장을 앞세워 2차 산업 관련 공장과 기업체들을 대거 외국에 매각하고 1차, 3차 산업에만 집중하는 후퇴적인 경제 정책을 펼쳤습니다. 2차 산업인 제조업을 위축시키는 정책으로 경제 구조가 허약해지면서 국가 경쟁력도 약화되었고 작은 위기에도 크게 흔들리는 체질로 주저앉았습니다.

더욱이, 부흥의 계기로 삼으려던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은 적자를 기록했고, 설상가상으로 2007년과 2009년의 대규모 산불로 국토의 약 50%이상이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관광업은 막대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2020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8.2%입니다.

그리스의 몰락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한 명의 잘못된 지도자가 국가와 국민을 어떻게 추락시킬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다음에는 멈춰버린 국가, 아르헨티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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