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국가, 멈춰버린 국가.. 22

▲사진=조광한 경기도 남양주시장 사진=남양주시청 공보과
▲사진=조광한 경기도 남양주시장 사진=남양주시청 공보과

지금까지 움직이는 국가의 행복한 국민과 멈춰버린 국가의 불행한 국민을 살펴보았습니다. 절절한 심정으로 연재한 이번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조선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 이전에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제국이 있었고, 그 전에는 조선이 있었습니다. 과연 조선은 어떤 나라였을까요?

예전에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운 역사는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된 식민사관의 우두머리 이병도가 주도한 것으로 지금도 논란이 많습니다. 이병도는 조선총독부 직속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하며 민족사를 상당 부분 왜곡했고,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사 전반에 식민사관을 정설로 굳힌 인물입니다.

조선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조선의 시작, 개국의 시점으로 돌아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움직이는 국가가 될 수 있었던 조선이정도전의 죽음으로 멈춰버렸다는 것입니다.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도전은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때 새 나라를 설계한 분입니다.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삼았고,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지어 나라의 기본구조와 통치체제를 정비했으며, 1394년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遷都)할 때 도성을 설계했습니다. 성리학의 이념을 담아 경복궁,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등 전각 및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의 4대문과 보신각 등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민본(民本)에 매달렸습니다. 부패한 관료들을 몰아내고 굶주린 백성을 구하는 길은 혁명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새로운 세상을 구상했고 오직 백성을 위한 이상향을 꿈꾸며 혁명을 추진했습니다.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고 새로운 국가의 틀을 만들면서 경제와 정치의 두 가지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경제개혁으로는 고려 말에 완전히 무너진 토지 소유를 바로잡기 위해 균전제를 통한 토지개혁을 시도했습니다. ‘계민수전(計民授田)’, 즉 백성의 수를 세고 균등하게 토지를 나눠주는 방식입니다. 몇몇 귀족들이 국가의 모든 토지를 독점하고 백성들은 비참하게 굶주리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자는 것이었습니다.지금으로 치면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정책이었습니다.

그러나 균전제는 기득권층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고 결국 관리에게만 조세의 권리를 주는 과전법이 시행되어 첫 번째 꿈은 상당히 훼손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 꿈인 정치개혁으로는 능력 있는 3정승(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의 재상으로 구성된 의정부가 어진 임금을 보필해 협치하는 관료 지배 체제인 ‘재상총재제’를 꿈꿨습니다.고려 말에 무능하고 전횡을 일삼는 단 한 명의 왕이 나라를 망치는 폐해를 목격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통치구조의 변화를 목표로 삼은 겁니다.

전문적인 학자들 의견은 다를 수 있겠지만,저는 정도전이 구상했던 의정부가 오늘날의 의회와 같은 기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집행은 왕과 6조(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가심의, 의결, 감독의 권한은 의정부가 갖고 협치를 하는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국가운영 방식이었습니다.

이러한 통치구조는 1215년의 영국 마그나카르타에 버금가는 구상이었습니다. 마그나카르타는 당시 폭군이자 무능한 왕이었던 존 왕이 귀족들의 요구에 따라 서명한 것으로, 왕의 절대 권력을 제한하고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영국의 입헌주의를 정착시킨 대헌장입니다.

마그나카르타는 전제적 왕권에 대항하여 국민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최대의 근거가 되었습니다.평의회의 승인 없이 군역 대납금·공과금을 부과하지 못한다고 정한 제12조는 의회의 승인 없이 과세할 수 없다는 원칙이 되었고, 재판이나 국법에 의하지 않으면 체포·감금할 수 없다고 정한 제39조는 국민이면 어느누구든 재판받을 권리를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국가를 설계하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만든 정도전은 1398년,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으로 목숨을 잃었고 진정 백성을 위한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그의 꿈은 거기서 끝나고 말았습니다.민본에 투철하고 신하와 왕의 협치를 구상한 정도전은 절대왕권을 강조했던 이방원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왕자의 난은 이방원이 개국의 걸림돌이던 정몽주를 제거했지만 개국공신에 들지 못했고, 11살의 어린 이복 막내가 세자가 되고, 왕족의 세력기반인 사병(私兵)이 혁파되고 지방으로 쫓겨날 처지에 놓이자 정도전과 신하들, 세자 등 이복동생들을 죽인 사건입니다.

왕자의 난 이후 이방원은 명분상 어쩔 수 없이 둘째 형을 세자로 추대했고, 어린 두 아들과 혁명 동지인 신하들을 잃은 태조 이성계는 실의에 빠져 왕위를 세자에게 물려주게 되니 그가 2대 임금 정종입니다.

이방원은 2년 후 제3대 임금 태종으로 즉위했습니다. 정도전은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루는 협치의 왕도정치를 꿈꿨지만 태종이 즉위하면서 초기 조선은 왕권(王權) 중심의 나라가 되어버립니다.

왕자의 난은 아들이 아버지를 짓밟은 사건이고, 사실상 조선의 건국이념과 가치가 무너진 사건입니다. 정도전이 그렸던 백성 중심의 국가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좀 과장하면 정도전이 죽는 순간 조선은 사실상 서서히 몰락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후 조선의 역사는 몇몇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권력욕에 사로잡혀 삼촌이 조카를 죽이고, 또 왕권과 신권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당파싸움이 점점 극심해지면서 피를 부르는 사화와 정국 반전이

왕조 전반에 걸쳐 발생하게 됩니다. 그후 조선 말기로 가면서 왕권은 완전히 유명무실해지고 신하들이 전횡을 일삼는 국가로 추락하고 맙니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그들의 머리속에 백성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기록에는 정도전이 먼저 왕자들을 제거하려 해서 이방원이 반격한 것이며, 정도전이 이방원한테 살려달라고 애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승자의 기록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예전 국사 교과서에는 그가 경망한 인물이자 분란을 일으키는 인물로 쓰여 있었습니다. 이는 정도전이 설계한 조선의 정통성을 폄훼하려는 일제와 이병도의 식민사관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요즘은 다행히 정도전의 민본사상과 위대한 선각자로서의 삶을 재조명하는 인식이 많이 확산 되었습니다. 식민사관으로 일그러졌던 우리의 역사를 이제는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스물두 편에 걸쳐 세계의 움직이는 국가들과 멈춰버린 국가들, 그리고 움직이는 국가가 될 수 있었던 조선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아픈 과거, 수많은 독립 투사들의 숭고한 희생, 피와 땀으로 이룩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거쳐 대한민국의 경제순위는 이제 세계 10위로 올라섰습니다.그러나 자만하고 방심하면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그리스처럼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우리 사회가 대화와 타협을 통한 포용의 정치,더 탄탄한 경제 발전, 온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생산적 복지를 통해 행복 국가로 우뚝 서기를 소망하며 시리즈를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매주 보내드린 글을 모아 2월 말에‘움직이는 국가, 멈춰버린 국가’ 책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당분간 책의 서문 몇 편을 보내 드리려고 합니다. 계속해서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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