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국가, 멈춰버린 국가’ 4 번째 서문

▲사진=조광한 경기도 남양주시장 사진=남양주시청 공보과
▲사진=조광한 경기도 남양주시장 사진=남양주시청 공보과

잊을 수 없는 내 삶의 일곱 단어. Thinking 1. 차별.Thinking 2. 폭력.Thinking 3. 약속.Thinking 4. 파격.

격(格)은 ‘바로잡을 격’이란 한자의 뜻을 가지고 있고, 정해진 틀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격의 반대인 파격(破格)은 기존의 정해진 틀과 고정관념을 깬다는 뜻으로 격을 깨는 파격으로 조금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다.

럭비는 1823년, 영국의 작은 소도시에서 축구 경기 도중 우연히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축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면서 시작된 스포츠 경기이다.

이 도시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중학생들의 축구 경기가 열렸는데 학교의 명예뿐만 아니라 승리한 학생들에게도 큰 영광이었기 때문에 경쟁이 무척 심했다.

드디어 축구 경기가 시작 된 날 경쟁 팀을 모두 물리친 두 팀이 결승전에 올랐고, 경기 후반부에 이르러 2대 1의 스코어로 승부가 결정 나려고 하던 참이었다.

그때 지고 있는 팀의 주장이었던 ‘윌리엄 웹 엘리스’라는 소년이 자기에게 공이 오자 한 손에는 공을 껴안고 한 손으로는 덤벼드는 선수들을 밀어 제치며 골대까지 달려가 공을 던져 넣었다.

당시 축구 경기는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하기는 했지만 손으로만 잡고 뛰어가는 건 반칙이었기 때문에그는 자신이 저지른 반칙을 인정했다.

그러나 경기를 인상 깊게 지켜 본 한 축구 관계자가 손에서 손으로 공을 옮기는 새로운 방식의 축구를 제안했다.

하지만 손으로만 축구를 하는 방식을 두고 축구 관계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는데, 찬성하는 사람들은 '윌리엄 웹 엘리스'가 다니던 학교의 이름을 따 럭비(rugby)라는 새로운 경기를 만들었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발만 사용하는 풋볼(football)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위대한 반칙’이라고 불리는 그의 행동은 축구를 꼭 발로 하지 않고 손으로 해도 된다는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 발상으로 럭비라는 새로운 경기를 창조한 것이다.

럭비는 훗날 영국의 청교도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새로 규칙을 만들어 미식축구로 거듭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나 또한 30년 전에 이러한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도전을 한 적이 있다.1992년 2월, 나는 새로 창당한 통합 민주당의 선전 국장으로 4월 총선의 홍보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광고 분야에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책과 자료를 찾아가며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했고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잠재된 재능이 있었던 건지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었던 어느 날, 나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꽤 유명한 이두엽을 찾아갔다.

그는 전략, 홍보 등 다방면에 막힘이 없었고 기존의 관행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우리는 뜻이 잘 맞았고 곧바로 의기투합했다.

우리가 홍보물에 쏟은 열정과 정성은 굉장했다 큰 그림을 이두엽이 그렸다면, 나는 색칠을 했다.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날마다 머리를 맞대고 브레인스토밍을 했고 마침내 4쪽짜리 홍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는 4년 동안 참았습니다.”1면을 장식한 카피였다. 그당시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1988년 이후 4년 동안 국민의 살림살이는 점점 어려워졌다. 2면에 자세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고 간단명료하게 풀었다. 3면과 4면도 깔끔하게 편집해 주목도를 높였다.

우리는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와서 환호했지만 막상 당내 반응은 당혹스러울 만큼 싸늘했다. 너무 파격적이라며 당직자들은 아연실색했다.

당시 정당의 모든 선거 홍보물은 1면에 예외 없이 당 총재의 사진을 넣는 것이 불문율이었는데 우리가 만든 홍보물에는 김대중 총재의 사진을 찾아볼 수 없었으니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심지어 당기위원회 부위원장은 화를 참지 못하고 나에게 손찌검까지 했다.

다행히 홍보물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봤던 당 사무부총장과 총재비서실장이 당 간부와 당직자들을 이해시킨 덕분에 홍보물을 원안대로 제작 배포할 수 있었다.

홍보물은 배포된 첫날부터 대박이 났다. 거리에서 홍보물을 나눠주는데 사람들이 다른 홍보물은 버리는데 우리 것은 버리지 않고 들고 가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는 홍보물을 거리에서 배포할 수 있었다.)

1면을 장식한 진솔한 문구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언론도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발상’이라는 제목과 함께 ‘한국 정치 광고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며 높이 평가했다. 덕분에 나는 ‘정치 광고의 귀재’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얻게 되었다.

만약 그때 내가 기존 정치 홍보물을 만드는 정해진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관행대로 총재의 사진을 커다랗게 넣고, 여러 문구로 복잡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아마도 우리가 만든 홍보물은 유권자들에게 외면 받고 다른 당의 홍보물처럼 쓰레기통에 버려졌을지 모른다.

나무는 껍질을 벗는다. 매년 쌓이는 묵은 껍질로부터 스스로 탈피해서 자기의 틀을 도려내는 아픔을 견디며 단단하게 조금씩 성장한다.

사람도 기존의 정형화된 낡은 관습에서 탈피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것을 생각할 수 없다. 아픔과 인고의 시간을 거쳐 철저하게 변해야만 이전과 다른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탈피는 소멸이 아니라 파격을 통한 새로운 시작이다..!!

우리가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기존의 관습과 틀을 벗어날 때 대한민국의 정치도, 국가 발전도, 일상의 삶도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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