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납치살해사건은 경찰과 정부, 국가 입장에서는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고 변명을 해서도 안됩니다."

경찰대학교 표창원 교수가 지난 7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수원에서 112 신고 후 피살되신 피해자께 사죄드립니다란 제목의 글에서다. 

표 교수는 한국 최고의 프로파일러로 불리고 있다. 연쇄살인 등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범죄심리학자인 셈이다. 

표 교수는 TV에 나올 때는 주로 사건이 터졌을 때다. 그것도 연쇄살인 또는 묻지마 살인 같은 잔혹범죄가 나올 때다.

그런 그가 수원납치살해사건과 관련해 경찰에 쓴소리를 했다. 경찰 행정과 제도, 구조적인 문제를 통렬히 비판했다. 유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사죄의 뜻도 함께 전했다. 

표 교수는 "일부 경찰관께서는 정확하게 주소도 알 수 없고 일대 모든 집을 다 뒤질 수도 없는 한국사회의 특성상 어쩔 수 없었다라는 억울한 심경이실 수도 있다"며 "하지만 미국처럼 모든 휴대전화에 GPS칩 부착을 의무화해야 했다"고 말했다.

표 교수는 "경찰을 포함한 응급신고시 자동으로 정확한 위치파악이 되지 않은 우리 시스템의 미비,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고 고쳤어야 했다"면서 "세계 최고 IT국가라며 선전을 하면 뭘 합니까. 눈 앞에서 귀가하던 선량한 시민을 납치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자 하나 어쩌지 못하는 무력한 국가와 경찰이 우리의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표 교수는 "시민들의 사생활의 평온과 수면의 자유 역시 중요하지만 어떤 문명사회에서 생명의 위협 앞에 놓여있는 피해자의 생존권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겠냐"며 "외국 대부분의 경찰에선 112(번호는 다 다르지만) 신고 접수만 전문으로 하는 민간인을 채용해 운용한다"고 설명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개인이 아닌 제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수원 사건에서는 112 신고센터에 배치된지 채 2개월이 되지 않은 경찰관이 전화를 받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한 흔적이 역력했다"며 "그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 제도의 문제라는 게 제 개인적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찰관이 서무, 예산, 회계, 장비 등 모든 분야를 담당하며 이리저리 부서를 옮겨 다니는 현 구조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며 "더욱이 승진만이 보상이요 목표가 돼 있는 한국 경찰문화는 전문가가 되기 보다는 승진에 유리한 자리를 찾아 헤매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또 "112 신고접수 업무는 경찰에서 그다지 중요한 자리라는 인식이 없기 때문에 이 업무를 제대로 하기 위한 전문교육이나 업무집중도 역시 떨어질 우려가 상존해 있다"며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관이 112센터와 연락하며 빈 틈 없이 신속하고 효율적인 수색이 이뤄지는 시스템이 구축되거나 훈련되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표 교수는 경찰청이 결코 마녀사냥하듯 문책 대상자만 찾아 가혹하게 처벌함으로써 여론을 잠재우려해서는 안된다고도 했다. 

표 교수는 "초기에 피해자와 112신고센터 경찰과 사이의 통화 시간과 내용을 줄이고 감춘 것 만큼이나 정직하지 못한 대응이었다"며 "차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결코 이보다 낫지 않은 대응이 반복되게 되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표 교수는 "시민 한 명의 목숨보다 정치적 관심이 걸린 사안에 더 큰 신경을 쓴다는 국민의 비난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며 "경찰청장이 경찰의 최고위직라는 영예에 만족하지 않고 그 다음 자리를 탐하는 현 구조와 관행, 문화 역시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사과도 잊지 않았다.

그는 "피해자와 유족께 개인적인 사죄를 드린다"며 "수년전 인천 라이브호프집 화재 참사에서 자녀를 잃은 한 부모님께서 제 홈페이지에 저와 경찰대학의 존재 이유가 뭐냐는 질책을 남기신 적이 있다. 아직 제 마음엔 그 호통소리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 후로도 제가 문제해결과 경찰 대응 제도와 관행 개선에 제 역할을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많이 무겁다"며 "수원사건은 또 하나의 무거운 돌덩어리로 제 가슴에 얹힐듯 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문제를 분석, 대안을 찾고 실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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