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산업부 송호길 기자
▲ 경제산업부 송호길 기자

[일간투데이 송호길 기자] 최근 서울 강북에 사는 한 지인에게 청약을 포기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집 근처에 신규 분양 소식이 있어 분양가를 알아보니 84㎡가 10억원이 훌쩍 넘었다"며 "대출이 어려워 청약에 당첨돼도 고민"이라고 했다.

최근 서울에서 저조한 경쟁률과 미분양이 속출하면서 분양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청약 경쟁률이 평균 164대 1로 세 자릿수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흥행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자료를 보면 지난 6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 한화 포레나 미아는 1순위 청약에서 328가구 모집에 2374명이 신청해 7.3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 단지의 최저당첨 가점은 34점이었다. 앞서 같은 지역인 강북구 미아동 '북서울자이폴라리스'도 지난 1월 1순위 청약에서 295가구 모집에 1만157명이 신청해 평균 34.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계약 포기자가 속출하면서 미계약 물량이 나왔다. 심지어 올해 같은 강북구에서 분양된 수유동 '칸타빌수유팰리스'(강북종합시장 재정비)는 지난 1순위 청약에서 216가구 모집에 90%를 웃도는 198가구가 주인을 찾지 못했다.

투기과열지구로 묶인 강북이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아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요자들이 청약통장 사용을 망설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대출이 막혔다는 점이 분양시장을 위축되게 한 영향이 크다. 청약에 당첨이 돼도 대출길이 막혀 분양을 포기하는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주택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입주경기실사지수(HOSI)를 보면 새 아파트 입주를 포기한 사람 10명 중 4명(40.7%)은 '잔금대출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를 이유로 급격히 대출을 중단하면서 선의의 피해를 떠안게 하는 사례는 반복되고 있다. '내 집 마련'이 절실한 청년·신혼부부 계층에 절망을 안겨줄 수 있다. 급한 대로 제2금융권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 사이에서 "10억원이 넘는 신규 분양은 '그림의 떡'"이라는 한탄 섞인 말들도 나오고 있다. 1900조원에 육박한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것에는 전 국민이 공감하지만, 이런 현장의 목소리와 수요를 반영하지 않은 급격한 정책 실행에는 아쉬움이 따른다.

애꿎은 피해를 줄이려면 가계부채를 관리하되 청년이나 취약계층에 대한 대출길은 최대한 열어놔야 한다. 대출을 받아야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계층에 대해서는 금융 부담을 덜어줄 금융정책을 확대해야 한다. 앞으로는 서민들을 선의의 피해자로 내모는 급진적인 방식은 지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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