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시대 저항 시인, 박근혜 지지로

▲사진=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실로 사용하게 될 용산 국방부 청사에 새로 설치한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6일 안보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실로 사용하게 될 용산 국방부 청사에 새로 설치한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6일 안보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일간투데이 신형수 기자]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故 김지하 시인을 추모했다. 9일 자신의 SNS에 김지하 시인의 대표작 ‘타는 목마름으로’를 올리면서 “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은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우리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윤 당선인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지하 시인이 발표한 시”라고 타는 목마름으로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김지하 시인의 위대함은 체제에 저항하는 참여시인을 넘어 인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생명의 가치를 위해 사상의 지평을 확대하고 직접 발언한 데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인이 오해와 비판을 감수하며 말하지 않았다면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양심은 지금처럼 성장하고 성숙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감사했다”며 “고인의 시와 생각은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김지하 시인은 전남 목포 출신으로 본명은 김영일이다. 4.19 혁명 이후 학생운동에 전념했는데 1964년 6.3 항쟁 때 참여했다가 수감돼 4개월간 복역했다.

이후 1970년 저항시 ‘오적(五賊)’을 발표했고, 1971년 가수 김민기씨와 함께 야학 활동을 시작했고, 2년 후 김민기는 김지하의 금관의 예수에서 주여, 이제는 여기에를 작곡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그해 전남 흥도 영화촬영장에서 체포된 후 최종적으로 사형까지 언도 받았고 1980년 석방됐다. 1975년 ‘타는 목마름’으로를 발표했다.

▲일 오전 강원 원주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김지하 시인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의 작품을 남긴 김지하(본명 김영일) 시인은 전날 오후 4시 원주시 판부면 자택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뒀다. 향년 81세. 2022.5.9 사진=연합뉴스
▲일 오전 강원 원주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김지하 시인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의 작품을 남긴 김지하(본명 김영일) 시인은 전날 오후 4시 원주시 판부면 자택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뒀다. 향년 81세. 2022.5.9 사진=연합뉴스

출감 이후 장모 박경리 선생의 도움으로 원주에 기거하게 됐고, 김지하 시인은 생명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여러 종교단체에서는 사이비 종교에 심취했다고 비판을 가했다.

1991년 이른바 분신 정국 속에서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칼럼을 기재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노태우 정권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진보 진영은 충격을 받았다.

2001년 5월에는 ‘실천문학’ 여름호를 통해 김지하 시인은 ‘죽음의 굿판’ 칼럼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2012년 11월 26일 시국강연회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당시 대선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혀서 진보 진영에 또 다시 충격을 안겨주게 됐다.

민청학력 사건 재심으로 보상금을 수령했는데 인터뷰에서는 돈을 목적으로 재심을 신청했다고 발언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난, 안철수 현 대통령직인수위원장에 대한 비난 등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리고 5월 8일 향년 81세의 나이로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자택에서 별세했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