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IMF는 ‘유비쿼터스 핸드(The Ubiquitous Hand)’가 한국경제 회생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유비쿼터스 핸드란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 네트워크에 접속가능한 상태를 의미하는 ‘유비쿼터스’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을 결합시킨 말로 정부가 ‘언
제 어디서나 시장에 개입하는 손’을 의미하는 조어다.

유비쿼터스 핸드의 역할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가 주택?부동산분야이다.

정부는 부동산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원가연동제, 분양가 심의, 재건축 요건 강화, 개발이익 환수, 양도세 강화, 종합부동산세 도입, 주택거래신고제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강경한 규제대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여기에는 건교부를 비롯하여 재경부, 행자부, 국세청, 그리고 경찰청까지 나서고 있다.

그런데 시장원리와 배치되는 제도는 효율성과 형평성 모두를 저해하고, 불법행위를 양산하며, 공급능력을 약화시켜, 결국 투기행위를 더욱 조장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주거복지를 악화시킨다. 실제로 과도한 직접규제들이 자꾸 늘어나면서 공급은 위축되었고 가격은 더 오르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공급을 확대하기보다는 수요를 누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장차 수급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규제가 심하면 공급능력을 약화시켜, 가격은 상승하고, 따라서 시장의 불안정성은 커진다는 것이 외국의 사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시장의 불안정과 이를 이용한 투기행위가 풍토병처럼 고착화된 것은 투기억제대책 및 경기활성화대책이 강도를 높이면서 반복되어 온 것에 큰 원인이 있다고 본다.

Go-Stop식 투기억제 대책이 반복되면서 시장은 계속 충격에 노출되었고, 그럴수록 불안정성은 증폭되어, 투기행위로 이득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투기억제 대책과 관련하여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수요를 합리적 기준 없이 실수요와 가수요로 구분하고 가수요는 제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가수요란 공급부족으로 가격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당장은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발생하는 가짜 수요를 말한다. 만약 사용목적이 아닌 거래목적의 수요를 가수요로 규정하여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주식시장은 가수요의 온상으로 제재를 받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원가연동제 등을 통해 시장가격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분양가격을 규제하는 한편, 연령과 주택소유 여부 등 수요자의 자격조건을 갖춘 자에게 주택을 우선 공급하도록 하고 있다.

판교 신도시의 경우, 원가연동제로 인해 분양받을 경우 시세 차익은 수 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판교 로또’라는 말이 나도는 실정이다. 그렇다 보니 청약통장은 수천 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의 프리미엄이 붙여져 거래된다고 한다.

이러한 정책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첫째, 국민주택규모 주택의 분양가격이 약 2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자를 정책적으로 우대하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

둘째, 저가의 주택을 소유한 자보다 훨씬 고가의 주택을 분양받으려는 장기 무주택자를 우대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윤리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셋째, 주택가격이 아니라 주택의 면적을 기준으로 정책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분배적 형평성에 위배된다.

넷째, 복권추첨식으로 주택을 제공하는 것은 형평성에 위배된다.
시장수요를 실수요와 가수요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구분에 의하여 누구는 지원하고 다른 사람은 제재하는 것은 시장만 왜곡시키고 거래질서를 혼탁하게 할 뿐이다. 정부는 Big brother가 아니다.

시장수요는 그 동기와 유형을 자의적으로 구분하여 차별하지 말고 동등하게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정부는 시장의 가격과 거래를 결정하는 주체처럼 행동하지 말고, 정보의 왜곡을 시정하고, 독과점의 행위를 제한하며, 자원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동안 시장을 왜곡시켜 온 투기억제 정책은 재고되어야 하며, 규제적 조치로서 투기행위를 근절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기본적으로 부동산시장에서 가격이 급등하고, 시장이 불안정하고 투기가 만연하게 된 것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직접규제는 이러한 수급격차를 더욱 확대시킬 뿐이다.

시장에 대한 신뢰를 갖고 정부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과도한 부담을 덜며, 일상적 경제활동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잡음에 대해서는 관망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건드릴수록 더욱 탈이 나는 것이 부동산시장이 아닌가 한다. 최근 다른 나라에서도 주택가격이 급등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우리처럼 강경한 직접규제 조치는 강구하지 않고 시장을 믿고 균형이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국가채무가 200조원을 넘었고, 경기침체로 적자재정을 편성해야하는 상황에서 어려운 재정형편으로 재정정책에 의한 선택의 폭은 점차 좁아지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직접규제의 철폐는 민간의 유휴자본을 생산적인 용도로 활용하는 길을 열어 줌으로써 경기회복을 촉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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