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미친놈 자처한 ‘길의 사나이’ 들

부족한 장비와 기술과 인력을 가지고 대자연의 절벽에 도전해야 했던 길의 사나이들.

고속도로란 일종의 거대한 정밀기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고속도로가 어떤 거이며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인가를 정확히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모르는 이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경험도 지식도 갖지 못한, 단지 의욕뿐인 젊은이들이 삽과 곡괭이, 그리고 산업전사라는 마음의 깃발을 들고 허허벌판에 뛰쳐나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는 것도 가진 것도 별로 없는 그들이라면, 그들이 하나의 사업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현장 관계자들 사이에 긴밀한 협력 체제를 수립해야 한다.

실상 이때처럼 ‘군관민’의 협조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예는 없었다고, 어느 현장감독은 당시를 회고하여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러나 협조란 곧잘 반작용을 가져오기도 하는 법인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엔 으레 옥신각신이 벌어지기 마련인가 보다.

현장 감독은 시공업체를, 시공업자는 인부들을, 인부는 감독들을- 하는 식으로 서로 못마땅히 여겨 눈에 보이지 않는 반감으로 대립하기도 하고, 혹은 아예 드러내놓고 서로 으르렁거리기도 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풍토가 그곳이라고 조성되지 말란 법이 없다.

예컨대, 현역군인의 신분으로 공사판에 파견된 군감독들은 시공업자들을 궁지에 몰아넣기 일쑤였다. ‘원리 원칙밖엔 쥐뿔도 모르는’ ‘새파란 장교 나부랭이들’이 건설 전문지술자를 자처하는 업자들에게 사사건건 이래라 저래라 하고 너무 까다롭게 따지면 덤벼들기 때문이었다.

불만은 업자들만이 아니다. 시공업체에서 고용한 십장이나 노무자들도 감독들에 대해서고분고분하지가 않았다.

"노가다 생활 삼십년에 이런 꼴은 처음 본다" 하고, H건설 소속의 이모(당시 50세)십장은 탄식했다.

"고작 자갈 한 개 때문에 자식같은 녀석들에게 시비를 받다니, 원…"

여기서의 ‘자갈 한 개’라는 골재로서의 그것을 의미한다. 아무자갈이나 마구 갖다 쓸 수 있는 공사가 아니기에 이런 말썽도 생겨났다. 그리고 ‘자식 같은 녀석들’이란 물론 새파란 군 감독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갈 한 개를 놓고도 그 규격과 품질을 일일이 따져야 하는 젊은 장교들의 고충도 범연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사실 그 사람들의 말이 옳을 때도 있었어요. 뭐니뭐니 해도 업자나 십장들이 우리네보다는 실무와 경험을 많이 쌓지 않았겠습니까. 그 사람들의 말대로 해야 공사도 빨리 진척되고 공사비도 적게 들거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방서에 명시되어 있는 조항대로만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시방서에 정해진 바 그대로만 해달라는 것이 우리의 요구였습니다. 말하자면 이것도 원리원칙에 죽고사는 군인 정신의 단면이었다고 하겠지요"

ROTC장교로서 공사에 참여했던 양보집중위(당시)는 이렇게 고충을 털어놓았다.

감독원과 도급업자는 서로 눈에 보이지 않는 금을 중간에 그어놓고 덤덤하게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감독원들이 긴장만 한다고 해서 만사가 해결되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업자측도 만만치는 않은 것이다.

"어느 분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튼 그분은 그당시 예편되어 있기는 했지만 현역시절에는 유능한 중견장교였을 뿐만 아니라 공병과의 대선배님이기도 한 분입니다. 아는 것도 많으려니와 관록도 대단하였지요"

'전직 상과'이 시공업체의 현장관리인 '현장작업소장' 등으로 부임해와서는 후배 현쳑장교들을 '감독님'이라 부르지 않고 '김중위'니 '이소위'니 관등성명으로 불러댄다. 일종의 압력적 존재인 것이며, 그런 속셈에서 업자측에서 '모셔다 놓은' 사람들인 것이다.

"나는 그런 경우를 꼭 두번 겪었습니다. 정말 곤란하더군요. 공과 사를 구별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수이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더군요. 사적으로는 종경할 만한 분이지만 업무에 관한한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추호도 양보할 수가 없는 형펴이었어요. 결국 우리가 취할 때도는 한가지 뿐이었습니다. 공사 감독으로서의 직무에는 철저를 기하되 시비를 가리는 자리에서는 선배에 대한 예우를 깎듯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나가니까 그 쪽에서도 역시 곤란했던 모양이에요. 저는 다른 공구로 파견되어 그곳을 곧 떠났습니다만 나중에 들으니까, 그 양반은 업자에게 속아서 이런 일을 떠맡았지 뭐냐고 분개하며 직책을 내던졌다고 하더군요"

업자들의 이런 농간을 몹시 못마땅해 했던 조모 중령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어떤 건설회사의 사장님은 나를 볼 때마다 '감독님 수고하십니다' 하고 허리를 구십도로 굽혀 절을 하곤 했습니다. 그 사장님이 나에게 절을 하는것은 결코 뭐 나라고 하는 인간이 이뻐서가 아닐 겁니다. 나이로 따지더라도 이건 우스운 노릇이었죠. 당황할 수 밖에요. 몇 번인가 그런 일을 당하고 난 끝에 나는 이제부턴, 저이가 최경례(最敬禮)를하는 것은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니락 국가예산 앞에 절을 하는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지요. 정산 결재난 기성고(旣成高) 체크때 내 도장이 찍히지 않으면, 돈이 나가지 않았으니까 말입니다"

군 파견 감독원들의 근무태도가 얼마나 엄정하고 철저한 것이었는지를 설명해 주는 즐거운 일화(미확인)가 있다.

수원공구의 공가사 종반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현대건설의 대표이사인 정주영씨가 박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한번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군 출신 젊은 감독들이 너무 원리 우너칙만 고집하는 까닭에 저희는 일을 못해 나갈 지경입니다"

이에 대해 박대통령은 극히 간단명료한, 그러면서도 의미심장한 한마디로 명쾌하게 응수했다.

"까다로운 감독과 까다로운 건설회사가 잘 협력해서 걸작품을 만들어 보시오" 박대통령은 웃으면서 말했다고 한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