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미술짓는 건축학도의 진솔한 이야기

[일간투데이 박성은 인상민 기자] 촘촘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오던 하수민 미술감독. 최근 그는 새로운 도약과 함께 자신의 세상을 확장하기 위해 분주하다. ‘알포인트’(2004), ‘마음이’(2006), ‘페이스 메이커’ (2011)에서 미술감독으로 활약하며 좋은 작품을 보여줬던 그를 추운 겨울 흡사 영화 세트장과도 같던 음식점에서 만났다.

시종일관 사람 좋은 웃음이 떠나질 않던 하 감독은 누가 영화미술감독 아니랄까봐 가끔씩 자신의 말에 어울리는 노래를 즉석에서 배경음으로 깔아줬다. 소란스러운 공간, 빈 막걸리 잔을 열심히 채워주던 그에게서 미술감독의 일상을 들여다보았다.

▲ 영화 '알포인트' 촬영현장에서. 당시 하수민 감독은 29세의 어린 나이로 미술감독으로 데뷔를 했다.

▲ 건축을 전공했는데 건축가가 아닌 영화미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건축을 전공하면서 설계가 재밌었고 나름 의미도 부여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건축 설계라는 것이 자신의 철학이나 생각을 담은 공간을 연출한다는 부분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선배들이 한정된 장소에서 자기 공간을 바로 펼쳐보지 못하고 몇 년씩 도면만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하루빨리 내 것을 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 여름에 민예총에서 주최한 강의를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강의 주제가 ‘건축과 다른 예술과의 만남’이었다. 강의 내용 중에 프랑스의 거리 극단이 줄을 이용해 인형 마리오네트의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자기네 도시를 돌아다니고 집 바로 옆에 있는 건물 사이를 지나가며 공연하는 것을 보여준 것이 있었는데 그게 마치 도시라는 공간을 스토리화 시켜버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다른 세계를 만드는 방식들이 나에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그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내 공간에 상상력을 동원하여 연출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대학교 4학년 때 휴학하고 여러 가지 조사도 하면서 영화미술에 대해 알게 됐고 처음에 고생하더라도 내가 뭔가 해볼 수 있는 영화현장에 뛰어들자 결심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연을 맺게 된 영화가 '정글쥬스'다.

▲ 남들보다 비교적 빠른 시간에 미술감독으로 데뷔했다

내가 미술감독으로 데뷔한 작품이 2004년 ‘알포인트’였는데 사실 운이 많이 따랐다. 그때 내가 미술 쪽 어시스트로 시작해서 4년 정도 경력을 쌓았을 무렵이고, 강제규 감독님의 ‘태극기를 휘날리며’에서 미술팀장으로 작업을 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가 미술적으로 되게 중요한 영화였기 때문에 평단이나 스텝 쪽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우연찮게도 ‘알포인트’도 군인들이 등장하는 영화였다.

우연찮게 기회가 왔지만 처음엔 안하려고 했다. 경험이 적어 겁이 났다기보다는 첫 작품은 조금 더 경험을 쌓은 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경력을 더 쌓은 후 스스로에게 만족할 만한 능력이 생겼다고 자신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제작사 말고도 ‘태극기를 휘날리며’에서 같이 작업하던 지인도 나를 추천했다. 주변에서 연달아 세 사람이 나를 소개시킨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됐고 결국 ‘알포인트’를 내 첫 미술감독 작품으로 선택하게 됐다.

▲ 알포인트 촬영지였던 캄보디아 현장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자욱한 안개로 둘러 싸여 빛으로도 서로를 분간하기 힘들었다.

▲ ‘알포인트’를 작업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우리나라에서는 페인트를 만들 때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이렇게 있으면 색상표를 보이며 ‘이 색깔 맞춰 만들어 주세요’ 하면 만들어 준다. 그런데 캄보디아에는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색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원하는 색을 만드려면 철저히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야 했다.

그래서 페인트 색상을 모아 만들어 내면 그 양이 결국 한정된다. 색을 똑같이 맞춰야하는데 양이 모자르게 되면 색을 못 맞추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건물 안 벽 사방을 칠해야 하는 경우에도 페인트 한통을 만들고 다 쓰면 다시 만들어 벽을 칠하면 색깔이 달라지는 것이다. 미술 스텝으로서는 미치는 것이다. 그리고 못질을 하게 된 상황인데 못이 얼마나 조잡한지 나무에도 박히지를 않았다. 여기 한국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현지에서는 계속 발생하는 것이다.

또 영화 촬영이 현지 상황 때문에 연기가 되면서 스텝들이 점점 지쳐갔다. ‘지옥의 묵시록’에서 코폴라 감독도 그랬던 것처럼 현장의 뜨거운 열기와 자욱한 안개와 매일 싸우다보니 모두들 정신공황상태가 왔었던 것 같다. 촬영 예정기간이 2달 가까이 늘어나니깐 실제 전쟁에 온 것처럼 미쳐가는 상태였다. 사람들이 힘이 드니깐 즉흥적이고 예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상황을 잘 대처해야 했는데 그때 나이가 29살이었고 어렸기 때문에, 나보다 경력도 나이도 많은 사람들과 조율해 나가야 하는 부분이 특히 내외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 좋아하는 미술감독과 이유에 대해

한국 영화 작품으로는 ‘혈의 누’의 민언옥 미술감독이 생각난다. 한국영화 미술 연출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제지소 뒤에 뾰족뾰족한 나무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 장면들이라든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설정된 것 없이 인물들의 상황을 정말 절묘하게 표현해 냈다. 영화를 봤을때 너무 인상적이었다.

외국 작품으로는 ‘장미의 이름’의 단테 페레티 미술감독을 꼽는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시학’ 을 찾아가는 장면을 계단을 이용한 미로로 구성해 꼬아서 이동하게 만들었는데, 영화속 미스테리한 전개와 거부감 없이 오롯이 그 장면이 받아들여진다는 게 참 놀라웠다. 텍스트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심정들이 영화 장면 장면마다 맞닿아 적절하게 녹아들어간 게 참 기억에 남았다.

▲ 미술감독으로 겪는 특별한 애로사항이 있나?

25살 처음 현장에 뛰어들었을 때 겁은 없었지만 애로사항은 정말 많았다. 한가지 에피소드로 말하자면 촬영 셋업을 하면서 영화감독이 차가 좀 더 더러워야겠다고 먼지를 구해오라고 지시하더라. 근데 갑자기 먼지를 어디서 어떻게 찾겠나 싶어 고민하다가 무작정 북창동 건물에 뛰어가서 창틀에 있는 먼지를 긁어모았다. 근데 차 전체를 뿌옇게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창틀의 먼지를 긁어야 하겠나. 순간 내가 뭐하는 짓이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차를 뿌옇게 만들고 나서 너무 열불이 나 셋업 중간에 장롱을 다 부셔버렸다. 근데 선배고 후배고 아무도 안 말리더라. 다들 겪었던 일이었던 시기라 그 순간은 모두 이해를 해주더라.

경력이 쌓여 미술감독으로서 애로사항이라면, 옛날엔 그저 일을 즐겼다면 지금은 설득의 문제인 것 같다. 옛날에는 설득하는 지점이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서로가 이견이 있으니깐 내가 생각하는 비주얼과 상대가 생각하는 비주얼은 분명히 다르게 된다. 근데 서로의 경험치가 있기 때문에 절대 포기안하는 부분이 있는데, 만약 감독이 끝까지 고집하면 미술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부분을 포기해야만 한다. 그런 것들이 나중에 그런 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아무래도 그럴 때 오는 상실감이 당연히 있다.

▲ 미술감독의 대우는 어떤가?

미술감독은 대우가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좋은 작업 후에는 많은 개런티가 책정되곤 하지만 보통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 기업에 처음 입사했을 때 받는 연봉과 비슷하다. 근데 그 나이에 그 수준이라는 건 문제가 있다. 소위 말해서 좀 뜬다 싶으면 직장인 평균연봉 보다는 많게 책정되지만 평균적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높지 않은 것 같다.

영화를 개봉하고 나오는 대부분의 이익을 자본이 가져간다. 물론 투자해서 이익을 가져가는 것이 단순 경제논리로만 보자면 합당하지만, 나날이 커져가는 영화 산업의 규모에 비해 스텝의 임금이나 근로조건 등 현장인력에 대한 복지는 아직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보통 미술감독들의 경우 공백기간 없이 작품 끝내고 바로 작품을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생각만큼 생활이 불안하진 않다. 그러나 만약 작품에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지 못했다면 직접 작품을 찾아 돌아다녀야 하기도 한다. 외도를 하기도 하고.

▲ 영화 '친정엄마' 촬영당시 현장에서 스텝과 회의 중인 하 감독의 모습

▲ 미술감독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점이라면

일단 가장 중요하고 진짜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영화를 정말 좋아해야 한다. 특히 영화를 많이 보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보면서 어느 순간 자기가 영화 미술에 빠지게 되던지, 영화 연출을 하든 정해지는 것 같다.

미술감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론이든 현장이든 자신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당장 먹고 살게 궁하다면 현장에 뛰어들어 부딪혀야 하겠지만, 그래도 텍스트를 비주얼라이징 하려면 단기간에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론적인 교육도 반드시 필요하다.

현장교육과 전문교육 둘 중에 어느부분이 미술감독으로 성공하기 위해 더 비중이 있는가라는 묻는 학생들이 많은데 내 개인적으로는 둘 사이의 균형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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