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태공 논설위원]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17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남아 있던 11개 부처 장관 인선을 발표함으로써 새 정부 17개 부처의 조각(組閣)을 마무리했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인선을 발표하면서 “새 정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돼 새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게 야당의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박근혜 당선인은 야당 지도부에 직접 전화로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

정치권은 18일 국회 본회의 정부조직법 처리 이후를 예상했지만, 박 당선인은 예상과 달리 청와대 비서실장 등 청와대 인선을 뒤로 미루고 나머지 11개 부처의 장관 후보자를 일괄 발표했다. 이는 정부조직 개편을 더는 미루지 않겠다는 박 당선인의 비상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야는 2월 임시국회 일정에 합의하면서 늦어도 18일에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처리키로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양측이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박기춘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야당에게 백기를 들라는 얘기와 다름없다”고 비판하며 “대학입시 중인데 합격자부터 발표하는 웃지 못할 사례로 남을 듯하다” “심히 유감스럽다”고 거듭 지적했다. 민주당 변재일 정책위의장도 “경제부총리제는 아직 신설되지도 않았고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상황”임을 강조하고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한 처사”라고 거듭 문제를 제기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으로서는 박 당선인의 원안을 고수하자니 협상이 교착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운데다 ‘청와대 거수기 노릇을 한다’는 야당의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민주당 또한 협상이 지연되면 될수록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는 여론의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협상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6대 요구사항을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무책임했다는 국민의 비판과 당내의 반발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렇다 보니 여야 어느 한 쪽도 통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책임 공방만 벌이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미 새 정부의 ‘지각 출범’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여야간 평행선 공방이 계속되면 새 정부의 정상 출범은 마냥 늦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조직 개편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대통령 당선인이 5년간 국정을 이끌어나갈 구상을 담고 있는 만큼 야당은 가능한 한 당선인의 의중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 출범 때처럼 전(前) 정부의 장관들을 빌려 국무회의를 구성해야 하는 옹색한 형편에 놓이게 된다.

더욱이 지금은 비상(非常) 상황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 국가의 안보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중차대한 상황에서 여야는 도대체 무엇이 국민을 위하는 일인가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즉시 교착상태를 해소해야 한다. 즉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고(agree to disagree)’ ‘선(先)합의 후(後)협상’이라는 차선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국정의 틀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국정 운영 자체를 가로막는 구태는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앞으로 5년 동안 나라를 이끌고 가야 할 책임은 국회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박근혜 정부는 시작하기도 전에 정치적 권위를 잃고 국정 추진력마저 힘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럴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건강한 복지경제, 튼튼한 외교안보 등 산적한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여야는 ‘협상을 위한 협상’을 즉각 중단하고 ‘대승적 합의 후 협상’을 선택하는 지혜를 발휘하기 바란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