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태공 논설위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6일 영국 정부가 케냐 나이로비에서 1950년대 영국 식민통치에 대항했던 무장투쟁 단체 ‘마우마우’ 원로들과 비공개 회담을 갖고 과거사에 대한 검증을 거쳐 피해자 배상 협상에 나서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1953년 3월 25일 케냐 라리 마을의 한 헛간에서 불이 났다. 밖으로 뛰쳐나오는 사람에게는 가차없이 칼이 날아들었다. 어린이를 포함해 150여명이 불에 타 숨졌다. 학살은 영국인이 데려온 다른 지역의 아프리카인에 의해 저질러졌다. 그 시절 케냐 중부 고원지역에서 수만명의 키쿠유·엠부·메루 부족민이 무차별로 감옥에 감금되거나 영국인이 만든 집단수용소로 끌려갔다.”

우리에게도 이와 흡사한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역사의 거울을 통해 볼 수 있다. 일제 식민지배 시절에 있었던 ‘제암리 학살사건’이다.

“1919년 4월 15일 아리다(有田俊史) 육군중위가 이끄는 한 무리의 일본 군경은 앞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제암리에 와서 기독교도·천도교도 약 30명을 교회당 안으로 몰아넣은 후 문을 모두 잠그고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이때 한 부인이 어린 아기를 창밖으로 내놓으며 아기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일본 군경은 아기마저 잔혹하게 찔러죽이고 말았다. 이같은 만행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일본군은 교회당에 불을 질렀으며, 바깥으로 나오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까지 모두 불에 타죽게 만들어 무고한 양민 28명을 학살하고 다시 부근의 채암리(采岩里)에 가서 민가를 방화, 31호를 불태우고 39명을 학살했다.”

하지만 일본은 과거 조선인 노동자 강제징용 및 위안부 강제동원 등에 대해 피해 배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식민지배 사실마저 개화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침략을 미화하고 있다.

90년대부터 독립운동가 유족 외에 일제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40여 건의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다수가 기각되고 승소는 한 건도 없었다. 일본은 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배상이 끝났다는 완고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사설에서 “어떤 배상도 고문당한 케냐인에게는 충분치 않다”며 “현재 영국의 발전은 수백년간 노예무역 등 식민통치에 기반한 면이 크므로 우리는 선대의 모든 과거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영국 정부는 “영국의 과거사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며 “역사로부터 기꺼이 배운다는 것이 우리 민주주의가 갖는 지속적인 특성”이라고 밝혔다.

일본은 역사를 자랑하거나 부정하기 이전에 먼저 역사를 배울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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