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는 언동 조심’ 지적

[일간투데이 김태공 기자] 1995년 일본의 책임있는 정치인의 사죄 결정판으로 평가받는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던 무라아먀 도미이치(村山富市·89) 전 일본 총리가 19일 일본 도쿄(東京) 중심가의 루포루고지마치 호텔에서 언론과의 인터뷰를 갖고 아베 총리에게 경고를 보냈다.

그는 최근 아베 총리의 우경화 행보에 대해 “아베 총리는 언동을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도 걱정하고 있고 주위에서도 ‘괜찮을까’ 하고 많이 걱정한다”며 주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아베 총리가 자신감에 가득 차 듣는 귀를 갖고 있지 않다”고도 말했다.

아베 총리의 나흘 전 8·15 전몰자 추도사에 대해서는 “왜 아시아에 대한 반성과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부전(不戰) 맹세를 하지 않았느냐고 본인에게 엄중하게 따져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아베 총리는 이 추도사에서 1993년 이후 모든 총리가 답습해 온 아시아 침략에 대한 반성과 사죄, 부전 맹세를 20년 만에 처음으로 하지 않았다. 이는 일본 안팎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사실상 부정한 것으로 해석됐다.

또 총리와 각료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는 “해서는 안 된다. 일본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때 A급 전범에 대한 도쿄재판의 처벌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총리나 각료가 참배하는 것은 당시 조약을 위반하는 것이다”라고 명쾌하게 잘라 말했다.

이어 그는 한일간 최대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 “우선 고노 담화를 긍정해야 한다”며 고노 담화 수정 의사를 밝히고 있는 아베 총리에게 일침을 놓았다. 그는 또 “양국 정부 간에 책임 있는 이야기를 하고 (일본 정부) 나름의 속죄를 통해 남겨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사민당 소속인 무라야마 전 총리는 ‘힘을 합쳐 평화헌법을 지킨다’는 대의명분을 위해서라면 사민당의 해체까지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새로운 정당의 출범 시기에 대해 “2년이 걸릴지 3년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2016년 12월로 예정된) 차기 중의원 선거 때까지는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1강 체제’로 불리는 자민당의 독주에 제동을 걸고, 특히 우익세력에 의한 헌법 개정만은 막아야 한다는 노(老) 정객의 희망을 담고 있다.

지난 7월 자민당의 압승으로 끝난 참의원 선거 이후 일본 정계의 이합집산 논의는 어지럽게 진행되고 있다. 먼저 야당인 민주당과 일본유신회, ‘모두의 당’ 사이에선 연대가 모색 중이다. 7개월 전까지만 해도 집권당이었다가 이제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민주당, 또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공동대표의 위안부 망언 이후 급격히 당세가 위축된 일본유신회, 여기에 ‘모두의 당’의 연대파들이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는 위기감 속에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연대추진세력이 모두 보수적 색채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무라야마가 주창하는 ‘반개헌 연대’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무라야마 전 총리는 ‘개헌이냐, 호헌이냐’를 기준으로 일본 국민의 대승적 결단을 유도하기 위한 정계 개편 화두를 던진 셈이다.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 내용
“일본은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책(국가정책)을 잘못하여 전쟁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국가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다대(多大)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한 번 통절(痛切)한 반성의 뜻을 표하고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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