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조영만 기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와 함께 세계 최대 가전제품 박람회로 꼽히는 베를린 국제가전 박람회(IFA)가 오는 6일 개최된다.

매년 연초에 열리는 CES가 그해 가전제품 동향의 척도라면 가을에 열리는 IFA는 그간 마케팅 중심의 행사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타사보다 한발 먼저 개발한 최신의 제품들을 전 세계에 하루빨리 선보이겠다는 기업들의 경쟁은 두 박람회의 비중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선점 효과(preemption effect)를 노리는 기업들에게 박람회장은 더없이 좋은 마케팅 장소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글로벌 기업들은 첨단제품의 경연장으로 CES와 IFA를 선택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성장한 우리 기업들도 두 박람회의 효과를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최신 기술을 적용한 신제품을 박람회장까지 공수하는 과정이 우리 기업들에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제품의 도난과 파손에 주의해야 하기에 기업들은 수십억 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난·분실에 따른 기술 유출을 대비해 특별히 보안업체를 섭외, 영화 속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며 ‘철통보안’ 속에서 제품 수송이 이뤄지고 있다. 이제 이런 과정은 일종의 통과의례(通過儀禮)로까지 자리 잡은 분위기다.

LG전자는 지난 2000년 3월 독일 세빗(CeBIT) 전시회에 60인치 PDP TV를 내놓기 위해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뉴델리공항으로 옮기다 제품을 도난당했다.

삼성전자도 2001년 4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열린 국제방송장비전시회(NAB Show)를 앞두고 출품하려던 63인치 PDP TV를 호텔에서 분실해 낭패를 겪었다.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이 제품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얇은 두께를 구현했으며 전 세계에서 3대에 불과한 제품이었다.

삼성은 작년 이맘때도 IFA 2012에 전시할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2대를 운송 과정에서 분실했다. 이 OLED TV를 항공편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거쳐 베를린 전시장으로 운반하는 도중 물품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분실된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삼성전자 측은 최첨단 기술을 빼내기 위한 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싫고 분실한 OLED TV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으며, 최근 베를린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휴게소 인근에서 사라졌던 TV를 되찾았다. 발견된 TV는 상자만 훼손된 채 완제품 상태였고 분해되거나 주요 부품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독일 경찰은 TV 도난 당시 보안요원 2명이 동시에 자리를 비운 점을 수상하게 보고 용의자를 쫓고 있지만, 아직 성과는 없어 보인다.

기업들은 출시되지 않은 신제품 분실을 우려해 미리 보험에 가입하곤 한다. 하지만 제품을 도난당해도 받을 수 있는 보험료는 제품의 가액에 대해서만 보상받을 수 있다. 개발비가 1조원에 달하고 수조원의 기술적 가치를 지닌 제품일지라도 특성상 기술적 가치에 대한 보험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첨단제품이 없어지면 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기업들은 자체적인 보안 강화를 위해 많은 비용 지출을 감수하며 제품운송과정을 전문 보안업체에 맡기고 직항 노선을 이용한다.

우리 눈에 비치는 화려한 박람회 이면에 이렇듯 기업들 스스로 이겨내야만 하는 남모를 고충과 애환이 숨어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보안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고 이제 여기에 지출되는 비용을 감당하며 사는 안타까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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