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지용 기자] 종로 3가에서 종묘 동쪽 가생이길을 꺾어 창경궁 높은 돌담길에 접어들자 노오란 은행잎이 우수수 발치를 건드린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가을의 끄트머리에서 만감이 교차, 인생의 뒤안길을 더듬어 본다.

쓸쓸히 딩구는 이파리를 보며 문득 ‘빠삐용’(papillon) 이 프랑스령 ‘악마의 섬’이라 불리는 기아나 천혜의 감옥에서 나뭇잎으로 엮어 만든 뗏목을 타고 상어떼가 득실거리는 망망대해를 가르며 탈옥하는 장면을 연상한다. 마치 잎새에 의지하여 세파를 헤쳐 나가는 인생과 닮았다.

가슴에 나비문신을 새겨 빠삐용으로 불리던 앙리 샤리예르는 1931년 25세의 나이에 포주를 죽인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아 절벽으로 둘러싸인 고도의 섬, 기아나에 유배되어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살인누명을 벗기 위해 8차례나 탈옥을 시도, 1944년 마침내 14년간의 유배생활을 마치는 자전적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를 영화화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영화의 한 장면 “인생을 낭비한 죄로 너를 기소한다”는 재판장의 준엄한 일갈에 홀연히 돌아서는 빠삐용이 환상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흡사 그리스 신화 이카루스가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 밀랍날개를 만들어 하늘 높이 날으는 도전을 거듭하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조선의 5대 궁궐 중 하나로 꼽히는 창경궁(사적123호)에는 북쪽 넓은 숲을 지나 끝자락에 위치한 춘당지를 중심으로 감색과 노오란 단풍이 가는 가을을 아쉬워 하듯 울긋불긋 장관을 이루고 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던 소현세자가 9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뒤 두 달만에 유배의 한을 끌어안은 채 비운의 생을 마친 곳이다. 창경궁 문정전 앞뜰에 놓인 뒤주에 갇혀 한 여름 더위와 허기로 8일동안을 신음하면서 28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친 사도세자의 원혼도 이 곳에 머물러 있다.

환경전에서는 중종의 진료를 맡았던 대장금이야기도 전해 지고 있으며 중종은 끝내 이 곳에서승하한 역사가 생생하다. 숙종시절에는 그 유명한 장희빈이 인현왕후였던 민씨를 폐위시키고 인현왕후를 저주하기 위해 꼭두각시 등 동물의 시체를 통명전 주변에 묻어 두었던 것이 발각되어 사약을 받고 여명을 달리한 곳이기도 하다.

이웃한 경춘전은 1504년 인수대비 한씨, 1701년 인현왕후 민씨를 비롯, 고종15년(1878년) 철종비 철인왕후가 숭하한 곳이다. 이처럼 창경궁은 왕족이 늦가을 나뭇잎이 하릴없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듯 운명을 마감한 비운의 역사와 원혼이 깃든 슬픔의 궁궐이기도 하다.

조선 9대 임금이었던 성종이 1483년 세운 창경궁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가 1616년 광해8 년에 재건되었으나 1907년 일본의 훼손으로 대부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 1911년에는 명칭을 창경원으로 격하시키고 일반에 공개하여 궁궐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말았다.

기구살스런 잎새에 감흥하여 가는 가을, 석별이 아쉬운 나머지 발길로 은행 잎 하나 걷어 차면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너에게 묻는다)를 떠 올렸다.

봄철 새싹을 돋워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순화시켜 주고 한여름 무더위를 식혀주며 삶의 맛을 적셔주는 은행나무, 가을이면 열매를 남겨 풍성함을 주고 늦가을 노오란 잎새로 남아 낭만과 그리움을 불태우는 창경궁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이렇게 가을이 가는구나/ 아름다운 시 한편도/ 강가에 나가 기다릴 사람도 없이/ 가랑잎에 가을 빛같이/ 정말 가을이 가는구나,,, ” (김용택; 가을이 가는구나) 낙엽더미를 한움큼 쥐고 창경궁 돌담길에 흩뿌리누나.
김 지 용(논설실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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