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변호사 (법무법인 지평지성)

얼마 전 정부가 ‘2009년 민간투자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사업시행자의 자기자본비율을 완화하고, 최소운영수입보장이 없는 사업에서의 단순출자자 변경을 ‘자금재조달’의 정의에서 제외하고, 5% 이내 총사업비 증가시 민간투자사업심의원회 심의 대상에서 면제하는 등 민간사업자 입장에서 수익성에 장애로 간주됐던 규제가 일부 제거된 것 같아 후련한 느낌마저 든다.

그 동안 지지부진하던 민간투자사업에서의 각종 협상도 봄 기운을 맞아 기지개를 켜듯 조금씩 다시 활발해지는 것 같다.

정부가 매년 이맘 때쯤 발표하는 민간투자사업기본계획은 법률이 아니고,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므로, 주무관청은 기본계획에서 제시하는 바를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투자사업 기본계획은 민자사업의 모든 단계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법률과도 같은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고, 공공투자관리센터(KDI)에서 발간하는 민간투자사업 표준실시협약 역시 법규는 아니지만, 협약 협상 단계에서 주무관청에 의해 강력한 법규적 효력을 갖는 것처럼 인용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향후 민자사업을 담당하는 각 주무관청에서도 이번에 개선된 민간투자사업기본계획과 이를 반영하는 표준실시협약을 현안에 적극 반영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이 개선된 기본계획에도 불구하고, 민자사업에 있어 왔던 불합리한 관행까지도 기본계획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설회사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건설회사 입장에서 민간투자사업 활성화의 걸림돌로 생각해 정부에 건의하고 싶었던 것, 그래서 민간투자사업기본계획에서 충실하게 반영되길 내심 바랐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주무관청은 그 동안 실시협약의 일방 당사자로서 민간투자사업을 관할해 오면서 비록 일부러 의도하지는 않았다고는 해도, 대상 사업 범위를 실제보다 축소해 공고하는 바람에 입찰 참여자가 낮은 가격으로 입찰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 받게 되는 데에 원인을 제공커나, 사업자가 약속한 적이 없는 기반시설(상·하수도 및 전기시설)의 설치를 사업자에게 요구커나, 협약 체결 이후 과도한 설계변경을 요청하면서도 총사업비 증가로 정확하게 반영해 주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사업시행자가 예측치 못했던 불합리한 요구를 해 온 사례가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건설회사는 주무관청과 재무출자자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통행료 산정이나 성과요구수준 준수 평가 혹은 향후 신규 사업 참여를 함에 있어 어떤 불이익이라도 있을 것 등을 우려해 결국 건설회사 부담으로 감수하는 데에 자발적으로 동의케 되는 경우가 많은데 민간투자사업에서 이러한 일들은 관행이라고 할 정도로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건설회사의 이러한 추가 부담을 주무관청과 사업시행자 간 협상력 차이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로 받아 들여야 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을 것이다. 주무관청의 협상 담당자라면 ‘어차피 제로섬 게임인데 국민 세금으로 할 바에야 사업시행자 부담으로 하는 게 더 낫다’고 여기고 사업시행자에 대해 이런 저런 요구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추가 부담이 발생케 된 원인을 좀 더 들여다 보면, 주무관청이 관계기관과 충분한 협의를 선행치 않는 바람에 사업 범위를 착오했거나, 주무관청 내부 및 유관기관의 각종 검토 절차에 쫓기다 보니 협약 문구를 모호하게 표현하고 체결을 마무리하게 된 경우가 적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무관청이 조금만 더 사업성 검토 및 관리가 철저했더라면 건설회사의 부담으로 귀결된 손해 발생의 원인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책임 소재가 명확치 않은 추가 비용에 대해 주무관청과 사업시행자가 합의해 사업시행자가부담키로 했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진실로 민간투자사업이 활성화되길 바란다면, 그 동안 협상력의 차이에 따른 결과로만 여겨졌던 추가 손실의 원인 자체가 존재치 않도록 사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주무관청이 검토 및 관리를 철저히 해 투자를 하기 위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이번 민간투자사업 기본계획에서 제2절 7-1이하로 추가된 ‘협상 이전 단계에서의 주무관청 역할 강화’와 관련한 조항들도, 그동안 문제로 지적돼 온 이 같은 사례에 대한 정부의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물론, 민간투자사업 기본계획에서의 신규 조항들의 취지가 그렇다 하더라도, 앞서 지적한 민자사업에서의 불합리한 관행이 실제로 개선되기 위해선 일선 담당 공무원 및 정부의 의지와 노력이 없인 불가능한 일이다.

‘민간투자사업 활성화’라고 해, 나라 전체가 어려운데 민간투자사업에 있어서만 건설회사에 유달리 월등한 수익이 있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주무관청에선 협약 협상에 임하기 전에 사업에 대한 검토를 보다 철저히 해 사업시행자가 수용키 어려운 요구를 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 주길 희망한다. 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 건설회사가 성실한 건설과 운영으로 화답한다면 민간투자사업의 활성화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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