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출장 등 사업비 증가…'업무 비효율' 부작용 속출
전문가 "스마트워크 활성화 통해 사회비용 추가 막아야"

<편집자주>

참여정부 시절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정책인 '국가균형발전'. 수도권에 모여 있던 대부분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이 짐을 싸들고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하지만, 일각에선 수도권 집중화를 완화시키고, 지방 자생능력을 키우기 위해 탄생한 '행복도시'와 '혁신도시'가 제 역할을 해내기 위해선 아직 넘어야할 산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낱 소란스런 이사행렬에 그칠 것인가, 대한민국을 재도약케 하는 '신의 한수'가 될 것인가.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지금 중대 갈림길에 섰다. 이에 본지는 4차례 기획을 통해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이 제시하는 '업무효율과 정주요건, 지역발전'이란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당면 문제 진단과 해결 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일간투데이 김예람 기자]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분하에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행정중심복합도시(이하 행복도시) 건설 사업을 적극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전 기관들은 '업무 비효율성'이란 또 다른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행복도시와 혁신도시의 공무원 및 직원들이 근무지와 서울을 오가는 잦은 출장으로, 고속도로·철도 위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등 사업비 증가와 행정력 낭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 "바쁘다 바빠" 혁신도시 직원은 출장 중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3년간 지방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 중 89개 기관을 대상으로 출장 증감 추이를 조사한 결과, 해당 기관 직원들의 지난 한 해 출장 횟수가 총 84만 1997회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13년 대비 28.3%(18만 5691회) 증가한 수치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같은 기간 중 출장횟수 증가폭이 가장 큰 지역은 세종시로 지난 2013년 대비 210.9% 증가했다. 이어 ▲경남(63.0%) ▲충북(45.6%) ▲울산(34.7%) ▲대구(32.6%) ▲부산(24.5%) ▲전북(21.5%) ▲광주·전남(15.9%) 순으로 나타났다.

출장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출장비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전체 공공기관 출장비는 지난 2013년 526억 4100만원에서 2014년 608억 9700만원으로 증가했다. 또, 지난해엔 717억 9200만원을 기록해 2013년 대비 무려 190억원(36.2%)이나 많아졌다.

실제, 업무특성상 공공기관 직원들 사이에선 수도권·관계부처 회의 등을 위한 출장이 급증해 시간·예산 낭비가 초래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실정이다.

광주·전남혁신도시에 입주한 A공사의 한 관계자는 "기존에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출장이 있었지만, 지방이전 후 평균 주에 2~3일은 서울행 고속버스나 KTX를 이용한다"며 "출장이 있는 날엔 도로나 철도 위에서 보내는 시간만 최소 8시간 이상이다"고 말했다.

경북혁신도시에 입주한 B공사의 한 관계자는 "업무특성상 불가피하게 수도권 출장이 증가해 현안사항 대처나 결제가 지연됨으로써 업무공백이 발생하는 경우가 존재한다"고 토로했다.

업무 비효율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공공기관 특성에 따라 비수도권 이전에 따른 사업경쟁력 약화와 기관의 분리이전으로 인한 업무협조 지장, 지방이전으로 인한 경상운영비 소요금액 증가 등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 김천혁신도시로 이전한 C시험원의 경우, 민간 기관과 경쟁하는 시험인증 업무를 주로 수행 중이다. 하지만, 전체 고객 중 70% 이상이 수도권에 위치함에 따라 혁신도시 이전 이후 점진적인 사업경쟁력 약화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또, 강원도 원주혁신도시로 이전한 D공단의 경우, 울산과 강원 등 2개 혁신도시로 분리 이전돼, 부서간 업무협조와 회계출납 등에 지장이 초래되고 있었다.

▲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출장횟수와 출장비용 증감 추이. 자료=국회예산정책처


◇ 길 위의 '공무원' 행복도시 '길 국장'

이 같은 문제는 행복도시에서 근무하고 있는 중앙행정기관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예산 낭비와 행정 비효율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 업무 외에도 대면 보고나 부처간 업무 협업 등으로 서울 출장이 불가피하단 것이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국무조정실과 행정자치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세종청사로 이전한 17개 중앙행정기관 공무원의 출장비는 504억원이 넘었다.

부처별로는 지난해 상반기 기준 국토교통부가 12억 2500만원을 지출해 가장 많았고, 이어 국세청(10억 6300만원)과 보건복지부(10억 3600만원), 기재부(7억 2000만원)의 순으로 나타났다.

한 산업부 공무원은 "세종시 이전 후 산업부를 비롯해 다른 부처에서도 전반적으로 출장횟수가 늘어난 것 같다"며 "게다가 세종시 인근으로 이주하지 못한 직원들이 출퇴근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세종청사 공무원의 출퇴근을 지원하는 통근버스 예산 집행액도 지난 2013년 83억 9800만원에서 2014년 136억 7700만원, 2015년 상반기 58억 6300만원으로, 지난 3년간 총 279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지방분권으로 인한 업무 비효율은 국회와 행정부가 지리적으로 분리된 상황에서 국무총리 및 기관장이 참석하는 회의가 주로 서울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세종시 소재 정부부처의 한 공무원은 "국무총리도 대부분 서울에 머무르다 보니 총리 주재 관계부처 회의도 서울에서 줄곧 개최되고 있다"며 "행복도시 출범 이후 서울시와 세종시를 오가며 길에서 업무를 보는 공무원이 많아지면서 '길 과장'과 '길 국장'이라는 웃픈(웃기고 슬픈) 신조어까지 생겨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장급 얼굴을 보는 것도 일주일에 겨우 한 두 번인데, 장·차관은 출장빈도가 더더욱 심하다"면서 "정부가 불필요한 서울 출장을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중요한 업무는 대면보고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영상회의 활용도가 아주 낮은 편이다"고 덧붙였다.

▲ 세종청사 이전 중앙행정기관(17개)의 국내출장비 등 예산 집행현황 자료=새누리당 조원진 의원



◇ '무용지물' 시스템…전문가 "비효율성 개선 시급"

한편, 정부는 국회와 세종청사간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영상회의’와 함께,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일하는 '스마트 워크(smart work)' 시스템 구축 등의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시스템 활용 실적이 저조해 사실상 무용지물 상태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효율적 업무를 위해 미흡한 스마트 워크 시스템에 대한 개선 등 제도적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조성한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에 따라 혁신도시 및 행복도시 기관들과 거래하는 민간기업의 출장비용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며 "다시 서울로 되돌릴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사회비용이 낭비되지 않게 운영활성화 등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또,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방분권으로 인해 업무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주장엔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지만, 적절하냐를 따지기엔 이제 큰 의미가 없다"며 "비효율을 최소화 해 또 다른 사회적인 비용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정부는 다시 한 번 행정도시를 이전한 목적과 긍정적인 효과부분을 확대시키도록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