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 미흡한 교육·정주여건… 가족 동반 이주율 '저조'
전문가, 기관이전 “장기적 관점으로 봐야” VS “득보다 실 커”

 

<편집자주>

참여정부 시절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정책인 '국가균형발전'. 수도권에 모여 있던 대부분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이 짐을 싸들고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하지만, 일각에선 수도권 집중화를 완화시키고, 지방 자생능력을 키우기 위해 탄생한 '행복도시'와 '혁신도시'가 제 역할을 해내기 위해선 아직 넘어야할 산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낱 소란스런 이사행렬에 그칠 것인가, 대한민국을 재도약케 하는 '신의 한수'가 될 것인가.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지금 중대 갈림길에 섰다. 이에 본지는 4차례 기획을 통해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이 제시하는 '업무효율과 정주요건, 지역발전'이란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당면 문제 진단과 해결 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일간투데이 송호길 기자] # 농촌진흥청에 근무하는 한 연구원은 지난 2014년 7월 청사가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한 뒤로 주말마다 수원에서 전주로 출퇴근하고 있다. 그는 혁신도시 이주에 대해 아내와 상의 끝에, 자녀의 학업 문제로 이주가 꺼려진다는 아내의 뜻에 따라 결국 먼 거리지만 출퇴근키로 마음먹었다.

총 107개 공공기관 중 89개의 지방 이전이 마무리 됐지만, 지방이전 공공기관의 직원들은 주말마다 그리운 가족 품을 떠나 혁신도시로향하는 버스나 기차에 몸을 싣고 있다.

배우자 직장과 자녀 학업 등의 이유도 있지만, 아직까지 혁신도시의 교육 및 정주여건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어 가족 동반 이주를 꺼리고 있다. 게다가 혁신도시 내 주택 가격과 임대료도 많이 올라 이주비용 상승으로 인한 부담 또한 만만찮은 상황이다.

◇ '자녀 교육 최우선' 출퇴근 선택한 직원들

지난 7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공공기관 지방이전사업 평가'에 따르면, 이전을 완료한 89개 기관의 가족동반 이주율은 평균 26.6%에 불과하다.

가족동반 이주율이 높은 지역은 개별이전(40.3%)과 부산(38.6%), 제주(36.7%) 순이었다. 반면, 낮은 지역은 충북(17.5%)과 강원 (18.8%) 순이었다. 개별이전이란 한국수력원자력(경북 경주)과 같이 혁신도시로 지정된 지역 외에 개별로 이전한 지역을 말한다.

가족동반 이주율이 저조한 10개 기관은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8.3%) ▲한국출판산업진흥원(9.0%) ▲국민건강보험공단(10.8%) ▲정보통신정책연구원(11.9%),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12.2%) ▲도로교통공단(13.0%) ▲한국토지주택공사(14.8%) ▲한국콘텐츠진흥원(14.9%) ▲교통안전공단(14.9%) ▲한국농촌경제연구원(15.8%)이었다.
 

▲ 도시별 가족동반 이주율. 자료=국회예산정책처

◇ 혁신도시 개발 호재에 주택 매매가 급등

대부분의 기관들은 가족동반 이주율이 저조한 이유를 이전지역의 생활환경과 교육·복지여건이 미흡해 단신 이주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공공기관 직원들은 가족동반 이주를 망설이는 이유로 열약한 교육과 정주여건을 문제 삼았다.

한국농어촌공사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직원들은 혁신도시로 이주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자녀 교육문제를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며 "나 또한 자녀가 대입을 앞두고 있는데, 지방으로 전학을 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세종시 정부부처 한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도로가 편도 1∼2차선 좁은 길로 이뤄져 있어 학원차로 인해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아주 위험천만한 상황에 노출돼 있다"며 "뿐만 아니라 서울과 비교해 피아노와 영어 등을 가르치는 방문 교사의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녀 교육문제에 자유로운 직원들 또한 혁신도시로 이주하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혁신도시 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몇년새 급등한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가가 가족 동반 이주를 결심한 직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농진청 한 직원은 "기관 이전 초기엔 전용 84㎡ 아파트 매매가 2억원이 채 안됐는데, 지금은 3억원 가까이 올랐다"며 "이전 초기부터 발령받아 내려온 사람들은 그나마 낫지만, 나중에 내려온 사람들은 오른 집값으로 인해 이주를 매우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규 공급하는 아파트들 또한 집값이 오른 만큼 분양가를 높여 책정하는 데다, 전주시내의 집값도 덩달아 올랐다"며 "전세가도 지난해 5월부터 2억원을 돌파후 현재는 2억 4500만원이 넘어가 이전 초기 집을 살 수 있는 돈으로 전세도 구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농진청이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하기 전인 지난 2013년엔 3.3㎡당 평균 아파트 매매가는 682만원이었지만, 이전 년도인 2014년엔 823만원으로 약 20.7% 상승했다. 또, 지난해는 847만원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전세가의 경우도 지난 2013년 3.3㎡당 평균 422만원에서 2014년엔 647만원으로 무려 53%나 급증했다. 지난해는 713만원을 기록했다.

주택산업연구원 노희순 책임연구원은 "공공기관 종사자들을 대상으로한 특별공급은 정부가 지원한 이주 유인책일 뿐"이라며 "기관과 지자체간 협업을 통해 관사를 공급하는 등 당초 정부가 약속했던 정주여건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 가족동반 이주율 저조한 10개 기관. 자료=국회예산정책처

◇ 전문가, 이주율 상승전망…의견 엇갈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놓은 혁신도시 가족동반 이주율 목표를 달성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일각에선 혁신도시 건설이 단기 사업이 아닌 만큼, 앞으로 꾸준한 개발로 교육 및 정주여건이 개선되면 가족동반 이주율도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임채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실장은 "현 시점에서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도시 이전 정책을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며 "혁신도시 또한 분당·일산 신도시처럼 20∼30년간의 장기적인 개발이 이뤄지면 정주여건이 갖춰지게 되고 자연스레 가족 동반 이주율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공기업 하나로 지역을 개발한다는 것은 이미 실패한 정책이며, 득보다 실이 크다는 부정적인 견해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마을에 공기업 하나 덩그러니 놓고 지역을 개발한다는 정책은 이미 1960∼70년대 프랑스와 미국, 영국 등에서 실패한 사례로 꼽힌다"며 "지역 주민에겐 일시적인 호재로 작용할 수 있지만, 막대한 사회적 비용 대비 해당지역의 인구 증가 및 개발효과는 미미해 득보다는 실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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