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파동과 우리집

[도자리의 가족이야기]

달걀 파동과 우리집

요즘 들어 자녀들이 라면을 끓이면서 계란을 넣지 않는다. "왜 달걀을 안넣어?"라고 물으면 "그냥도 먹을만 해, 라면이야 뭐, 스프 맛이지 흐흐흐"라며 김치 통만 달랑 챙겨 들고 제방으로 간다.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의 영향으로 달걀값이 치솟으면서 슬그머니 바뀐 집안 풍경이다. 우리 동네만 해도 4500원이었던 30개 들이 한판이 어느새 1만1000원을 넘었다. 금달걀이란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 하다.

예전에는 가끔 냉장고를 열어 봤다. 혹시 달걀이 떨어질 듯 하면 채워 넣으려고 살펴보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요새는 냉장고 속 달걀 줄어드는 속도도 예전같지 않다. 가족 서로가 신경을 쓰면서 아끼는 때문이다.

정부가 계란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지난 4일부터 계란과 계란가공품 관세율을 0%로 적용했다지만 언제나 수급이 정상화되려는지 알수 없는 상황이다. 몇달 갈거라느니, 1년도 넘게 걸릴 수 도 있다느니 시중에는 숱한 카더라통신이 떠다닌다.

아무려나 적지 않은 기간동안 이 상황이 지속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각종 형태의 사재기와 매점매석이 횡행하는 바람에 계란값이 쉽게 잡히지 않을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관련 부서가 조사까지 벌인다니 예삿일은 아니다.

어렸을 적 외갓집에 자주 갔었다. 마당에서 꼬고거리며 먹이를 쪼으던 닭들의 모습은 익숙했다. 암탉 무리를 휘젓고 다니던 큰 장닭 한마리가 있었는데 내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초가집 지붕까지 홱 올라갈 정도로 기동력이 좋았던 놈이라 피해다니기 일쑤였다. 암탉이 낳은 계란이라도 꺼내려고 닭장으로 들어 갈때면 주위를 살피기에 바빴다.

먹을게 많지 않았던 그 시절. 뜨끈뜨끈한 밥에 간장과 함께 계란후라이를 비며 먹으면 별미이자 꿀맛이었다. 어릴때 입맛은 평생간다고 한다. 지금도 별다른 반찬이 없으면 습관처럼 계란간장버터 밥으로 한끼를 때운다.

생각해 보면 계란 요리는 무궁무진하다. 단순한 프라이부터 삶은 달걀, 오무라이스, 복음밥 등등 곳곳에 투입돼 제 몫을 다해 준다. 약방의 감초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세상 부러울 것 없다'는게 국민의 정서다. 북한의 오랜 공약도 '흰 쌀밥에 고깃국'이었다. 서민들의 밥상이 더이상 초라해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순실 국정 농단이니,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니 하면서 어수선한게 요즘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렇지만 정부와 정당이 서민 경제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된 처방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계란도 제대로 맘 놓고 먹지 못할 지경에 이른 현실에 초라함까지 느껴지는 지경이다.

그래서 말인데, 아무리 팍팍한 살림살이라지만 오늘 저녁엔 폭신폭신한 계란찜이라도 먹어야 겠다.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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