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곳곳의 편의점에서 1300원하던 소주가 1700원으로 뛰었다. 언제부턴가 음식점에서는 4000원을 받는 게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일상의 피곤에 지친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삼겹살과 함께 ‘간단히 한 잔하기’도 부담스러워졌다. 생맥주 가격도 들썩거린다. 일부 주점에서는 이미 한 잔 가격을 3000원 수준에서 4500원으로 올렸다. 당국이 개입하면 한동안은 주춤하겠지만 상승세가 꺽이지는 않을 듯 싶다.

무, 배추, 계란. 우리네 식탁을 책임져 온 생필품들이다. 하지만 금무, 금배추, 금계란이 되면서 서민들의 생활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으로 인해 닭고기와 소고기, 우유 값도 치솟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빈약한 보통 시민들의 밥상 풍경은 갈수록 초라해 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 간단히 한잔하기도 어려워진 소줏값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자고 깨면 뭔가 하나씩 상품의 가격이 오른다. 그것도 경쟁적으로 진행되는 추세다. 절망적이게도 이 같은 가격 상승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한민국의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독과점 상태는 언제든 경영자가 마음만 먹으면 값을 올릴 수 있는 구조다. 농·수·축산물로 대표되는 각종 물품의 유통구조는 복마전 상태다. 어떤 과정에서 얼마가 더 붙어서 거래가 되는지는 이해 당사자들만 안다. 점 조직에 가까운 상하 집단들이 입맛대로 값을 쥐락펴락한다. 현재로서는 담합과 사재기 근절은 요원하다. 소비자들은 그들이 정한 가격대에서 거래를 할 수 밖에 없다. 억울하고 분해도 뾰족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게 현실이다. 정부의 대책이란 것들은 대부분 ‘도돌이표 미봉책’에 그치고 만다. 사안이 심각해지면 그제서야(대부분 뒷북 행정이지만) ‘발본색원’ ‘엄중한 사법처리’ 운운하는 엄포를 놓는다. 이제는 귓등으로 흘려들을 정도로 식상한 흘러간 옛 노래 취급을 받는데도 비슷한 행태는 마냥 반복된다. 비웃음을 받아도 유구무언일 터이다. 자업자득인 셈이다.

요즘의 신문과 방송은 연일 바쁘다. 국정농단과 탄핵정국, 대선이 단골 주제다. 특검, 헌법재판소, 국회, 여야 정당 등 관련 기관의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앞서 보도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국가의 장래를 좌우할 사안이니 그럴 만도 하다. 나라 전체가 극도로 어수선하다. 한 치 앞도 내다 보기 힘들 지경이다. 국민은 ‘촛불’과 ‘태극기’로 상징되는 양극단으로 갈라져 있다. 서로 물고 뜯는 지리한 다툼은 언제 끝날 지 알기 어렵다. 대한민국호는 방향을 잃고 휘청거리며 좌초 직전으로 내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기초 생필품 값이 급등하고 각종 사건 사고가 터져도 슬그머니 묻혀 넘어가기 일쑤다. 직무가 정지된 현직 대통령은 법률전문가들과의 전투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대선 출마에 뜻을 둔 정치인들은 세 불리기와 여론조사 수치 높이는데 치중할 뿐이다. 구심점을 잃은 정부 관료와 공무원, 유관기관 관계자들은 아예 수습에 나설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처럼 보인다.

■ 선장잃은 정부에 물가통제 기대 요원

선장을 잃은 정부, 당리당략에 춤추는 정치판,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 내지 못하는 재계, 끝장을 보자며 이념 대립에 골몰하는 국민. 총체적 위기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해법도 탈출구도 찾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가가 바로 서려면 국민이 편안해야 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당시 제나라 환공과 관중이 나누었던 대화는 현실 정치에서도 유효하다. 정사를 잘 살피는 방안을 듣고 싶다는 환공의 물음에 관중은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국민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로는 세금을 줄이면 백성이 부유해지고 한번 내린 명령을 번복하지 않으면 만인이 따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책을 시행할 때는 사사로움이 없어야 하고 말은 반드시 미덥게 해야 한다는 등의 방안도 덧붙여 가면서 한 대화다.

하나같이 지당하고 옳은 말씀들이다. 이 땅의 지도자급 인사들은 툭하면 고사성어를 꺼내 든다. 그 정도로 높은 수준이라면 환공과 관중의 대화 정도는 진작에 가슴과 머리에 새겼을지도 모르겠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죄’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적어도 도덕적으로는 죄인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민생물가 상승을 막겠다며 숱한 회의를 했다. 대책도 나왔지만 늘 등장하는 레퍼터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 고위 공직자의 얘기는 우리가 처한 현재 상황이 어떤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예전에는 정부가 시장가격을 감시·통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가격 인상 요인이 크지 않으면 인상을 재고하거나 시점을 늦출 수 없겠느냐’고 부탁하는 수준이다” 이런 판국에 무엇을 더 기대할까.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또 어떤 상품 가격이 올랐을까’를 걱정해야 하는 기막힌 현실이 꽤나 오래 갈 것 같다. 걱정이다. <이동재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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