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집 안부 챙기기

장인 어른과 장모님 연세가 여든 중반을 바라보신다. 자잘한 노환을 달고 지내다시피 하시지만 비교적 건강한 편이시다. 참 다행이다. 가끔 안부 전화를 드리면 거꾸로 ‘술, 담배 조심하고, 자네 몸이나 잘 챙기게’라고 당부하신다. 공연히 멋쩍어서 서둘러 통화를 끝내기 일쑤다.

두 분은 단독주택에서 생활하신다. 4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갖은 애환 속에서 3남1녀를 키우고 출가시킨 그 집이다. 계단 오르내리기 힘들고 청소하기도 만만치 않으니 아파트로 옮기시라고 해도 손사래를 치신다. 자식들과 함께 지낼 생각은 아예 없으신 듯하다. 몇 차례 권해 봤지만 귓등으로 듣고 흘리시니 그뿐이다.

휴일이면 슬그머니 아내의 움직임을 살핀다. 아침부터 이것저것들을 주섬주섬 챙기면 ‘처가에 갈 준비를 하는구나’하고 알아채면 된다. 옷을 주워 입고 손에 자동차 열쇠를 들고 있으면 자연스레 “갈까요?”라고 묻는다. 물론 내 의사와 상관없이 ‘가자’는 얘기다. 같은 서울 하늘아래 살지만 강동 쪽에 있는 우리 집에서 강서 쪽 처가까지 40~50분은 걸린다. 간혹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가 막히면 1시간30분을 넘기기도 한다.

지난해부터 우리 부부는 적어도 한 달에 두세 차례는 처가를 찾는다. 이런저런 잔병치레가 적지는 않은 편이셔서 자주 뵈어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부엌살림 점검이나 세탁기 청소 등은 외동딸인 아내 몫이다. 현대식 기계를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은 장모님은 딸이 방문할 때마다 반색을 하신다. ‘요것도 봐주고 조것도 봐 달라’고 주문을 할 수 있으시니 당연해 보인다. 귀찮을 법도 한데 아내는 별다른 군소리도 하지 않고 일을 해 낸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서방인 내게 들으라는 듯 “엄마가 딸 하나만 더 낳았으면 교대로 할 수 있었을텐데”라고 푸념을 한다. 그래도 처가에 다녀오면 아내의 표정은 밝다.

내 부모님은 20여년 전에 일찌감치 하늘나라로 가셨다. 뭐가 그리 바쁘셨던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1년 사이에 두 분 모두 자식들 곁을 떠나셨다. 돌아가신 후에 아무리 후회를 해도 소용없다는 걸 그때 절절하게 깨달았다. 오직 효도가 모든 행실의 근원이 된다는 말은 옳고 또 옳다. 처가의 두 어르신을 되도록 자주 찾아뵈려고 애쓰는 까닭이기도 하다.

수욕정이풍부지/자욕양이친부대(樹欲靜而風不止/子欲養而親不待). 나무는 조용히 있고 싶어하지만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뒤늦게 철이 들어) 봉양을 하려 하지만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효도에 대해 얘기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풍수지탄(風樹之嘆)이 유래된 글이라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외우고 있으니 신기하다는 생각도 든다.

상당수의 사위들이 그렇듯이 처가에서 하는 일이라는 건 자거나 빈둥거리는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얼굴 디밀고 보여드리는 게 고작인 셈이다. 그런데도, 귀가하기 위해 인사를 드릴 때 마다 장모님은 나직하게 내게 말씀하신다. “고맙네”라고. 인생 100세 시대라고들 한다. 장인 어른과 장모님이 머지않아 태어날 증손주들이 커가는 모습까지 오래오래 보실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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