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로봇 기술의 발달로 전문직까지 고용 위협 심각
기본소득, 정치적·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 진보·보수 폭넓게 지지

▲ 4차 산업혁명으로 고용의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그 해결책으로 기본소득 도입이 제시되고 있다. 3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등 단체가 기본소득 개헌운동 출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지난해 '알파고' 충격으로 우리는 인공지능(AI)이 펼쳐 보일 미래상의 단면을 보게 됐다. 무수한 경우의 수 때문에 기계가 절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 바둑에서 인간을 대표한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 알파고 앞에서 무력했다. 앞으로 바둑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원에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무수한 인공지능기기와 로봇들이 쏟아져 나오면 인간의 존재감은 더욱 더 미미해질 것이다.

통상 기술의 발전은 기존 생산방식과 생산조직을 변화시켜, 고용형태와 직무방식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생산성을 뛰어넘는 기계의 발전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기계의 사용량을 늘리면서 인간의 고용이 줄어들기도 하며(대체효과), 때로는 기계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인원의 고용을 증진시키기도 한다(보완효과). 또는 기존 고용을 해소함과 동시에 새로운 부문의 시장을 개척함으로써 새로운 고용의 창출(생산효과)을 불러 오기도 한다.

▲인공지능·로봇의 출현으로 고용위기를 맞이한 인간

1차 산업혁명을 비롯해 이제까지의 기술발전은 단기적으로 고용을 감소시켰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고용을 증진시켜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충격은 이제까지의 기술발전과는 그 성격을 달리 할 것이라는 우울한 예상이 많다.

연구기관들이 잇달아 내놓은 발표에 따르면, 로봇과 인공지능(AI)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사람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오는 2055년까지 50% 정도의 인간의 업무 활동이 로봇과 AI에 의해 자동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015년 말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 있는 전체 고용 인원의 55~57%는 로봇에 의해 자동화될 가능성이 큰 직업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문제는 로봇에게 빼앗기는 일자리가 과거의 생산직처럼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법률과 행정, 의료와 같은 전통적으로 기계의 의한 대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전문직 분야도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로봇에 의해 대체될 위험이 높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미 전 세계에서 로봇을 생산현장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나라로 꼽히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제조업 노동자 1만명당 로봇 수는 531대로 전 세계 평균인 69대의 8배에 이른다. 일본(305대), 독일(301대), 미국(176대) 등 주요 기술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단순 노무직뿐만 아니라 전문직 고용까지 위협하는 기술혁명

또한 4차 산업혁명은 고용의 대체(감소)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직무수행 방식도 크게 변화시켜 고용의 질의 변화(저하)를 불러 온다. 최근 음식주문·배달·대리운전·가사 등의 서비스를 주문할 수 있는 각종 스마트폰 앱 등이 속속 나오면서 앱을 통한 서비스 수요와 공급이 이뤄지는 이른바 '플랫폼 노동'이 증가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은 소비자 측면에서는 편의성이 증진됐지만, 안정적인 장기고용과 소득을 특징으로 한 전통적인 고용관계에 반해 피고용인(노동자)의 노동의 질과 소득을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노동자나 마찬가지이지만, 외형은 독립사업자 형태여서 노동권과 소득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가운데 저소득과 고용불안의 위험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대중화로 인한 플랫폼 노동으로 고용의 질·소득 악화

일자리정부를 자임하며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업무지시 1호로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명하면서 의욕적으로 일자리 창출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로선 이제까지 접해보지 못한 복합적인 문제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만성적인 저성장상태인 우리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전통산업과 ICT(정보통신기술)의 융합 아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4차 산업혁명을 적극적으로 추동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4차 산업혁명의 파고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실업과 고용의 질 저하로 인한 저소득층 증가, 소득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제시되고 있다. 기본소득은 국가가 전 국민 누구에게나(보편성) 연령·성별·직업·소득 및 재산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무조건성) 일정액의 소득을 현금으로 정기적으로(정기성) 똑같이 지급하는 제도이다. 기본소득을 받으면 아주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이 가능하도록 충분한 수준(충분성)으로 지급돼야 한다. 세계적인 대표 사례로는 미국 알래스카에서 지역 거주 주민들에게 지난 2015년 기준 연간 2천72달러를 지급하고 있고, 스위스·핀란드·네덜란드·캐나다 온타리오 등지에서 일부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험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고용위기에 대응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기본소득

500여년전 영국의 인문주의자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본소득은 진보·보수의 이념 스펙트럼에 상관없이 폭넓게 지지받고 있다.

진보진영은 기본소득을 통해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삶의 기반이 마련됨으로써 근로자가 해고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사용주의 부당한 처우에 대항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여성들 또한 가부장의 속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홍규 영남대(법학) 교수는 "전통적인 사회보장제도는 남성 정규직 노동자가 가정을 부양하고 여성은 전업주부로서 가정살림을 맡는 성별분업체제하에서 남성 임금에 부과된 보험료에 기반한 사회보험체제였다"며 "기술발전과 사회변화로 남성과 여성간의 사회적 성별분업이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든 이 시대에는 국민 개개인에게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제가 더 타당하다"고 평가했다.

▲진보, '인간으로서 존엄' 확보…보수, '큰 정부'방지, 기본소득 지지

보수진영은 복지 수혜 대상을 선별하는 관료 조직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큰 정부'의 비효율성을 줄이고 실업난 해결과 내수 소비 증진을 통한 시장 활성화를 위해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한다. 전통적인 사회보장제도 아래에서 빈곤한 자가 생활보호나 공적 부조를 받으려면 자산조사에 의한 수급자격 여부를 심사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개인 사생활 침해, 행정권의 남용·비대화 등 여러 가지 행정비용이 발생하는데 기본소득은 그러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인 실현가능성도 높다. 직관적으로는 선별적인 복지가 불평등해소에 더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선별적인 복지는 소수의 최하층 소득층만 수혜자가 됨으로써 중산층 이상의 강력한 조세저항을 불러 온다. 중산층의 조세 납부 거부에 따른 재정난과 사회 계층간의 갈등 심화로 오히려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강남훈 한신대(경제학) 교수는 "기본소득은 사회 모든 계층이 수혜대상이 됨으로써 납세자들이 조세납부 효용감이 높아지면서 제도 안정성이 높다"며 "다만 납세자들이 내는 돈과 받는 돈이 정확하게 연계돼 납세자들로 하여금 정부가 자신의 돈을 낭비하지 않고 시민을 위해서 옳게 쓰고 있다는 신뢰를 갖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실현가능성·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도 우수

아울러 기본소득은 경제적 효율성도 증진한다. 선별적인 복지가 복지 수혜자들로 하여금 복지 혜택을 놓치기 싫어서 노동을 통한 경제적 자립을 기피하는 '실업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높은 반면에 기본소득은 노동 유무와 상관없이 소득이 보장되기 때문에 협동조합, 사회적 경제 등 사회적 부문의 일자리가 활성화되면서 사회의 생산수준을 상승시켜 장기적으로 재정안정성에도 기여한다.

다만 급진적이고 전면적인 기본소득 추진은 국가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만큼 전문가들은 장기 저성장 경제 아래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인 장애인, 노인, 아동, 청년 등을 위한 '부분 기본소득'을 먼저 도입해 중장기적으로 전체 국민으로 대상범위를 확대할 것을 권고한다.

김용하 순천향대(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지난 2014년부터 시행 중인 전체 노인 중 70%에게 매월 일정액을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이 비록 전체 노인에게는 지급하지는 않지만 해당 노인들에게는 다른 부가 조건 없이 지급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에 가까운 개념이다"며 "노동능력이 취약한 장애인과 노인부터 소득보장을 한 뒤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 논의를 진행해야한다"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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