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





윤동주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출처 : 시집 '솔개' 시인생각(2013)

▲금년 12월 30일은 영원한 문학청년 윤동주의 탄생 100주년 기념일이다. 올해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이 그의 삶과 시를 기리는 글을 쓰고 행사를 가진 건 꼭 백년이라는 세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스물여덟 해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갔으며,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도 내지 못했던 시인이 사람들의 마음에 이토록 오래 뜨겁게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시와 삶을 통해 드러난 그의 높고 맑고 뚜렷한 심혼 때문이 아닐까. 그는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통해 별처럼 투명하고 단단해진 자아로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자 한 시인이었다. 이 시에서도 그는 “길을 잃어버린” 자기와 ‘돌담’과 ‘쇠문’으로 굳게 닫혀있으며 “풀 한 포기 없는” 자기현실(식민지시대)을 성찰함으로써, 그럼에도 자신이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남아 있는 나”와 “잃은 것을 찾는 까닭”이라는 희망과 의지를 다지고 있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소크라테스의 변명') 사람으로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고, 살아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저물어가는 한해를 돌아보며 곰곰 되짚어볼 일이다.


■윤동주(尹東柱)

△1917년 만주 북간도 명동촌 출생, 1945년 영면.
△룽징광명중학교, 연희전문학교 문과, 릿쿄대학교 영어영문과, 도시샤대학교 영어영문과.
△1947년 '조선일보'에 '달을 쏘다' '자화상', '경향신문'에 '쉽게 쓰여진 시' 입선.
△1940년 문예지 '새동명', 1945년 '은화식물' 동인.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선정.

△시집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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