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지용

불사조(不死鳥)


정지용



비애(悲哀)! 너는 모양할 수도 없도다.
너는 나의 가장 안에서 살았도다.

너는 박힌 화살, 날지 않는 새,
나는 너의 슬픈 울음과 아픈 몸짓을 지니노라.

너를 돌려보낼 아무 이웃도 찾지 못하였노라.
은밀히 이르노니 ― '행복(幸福)'이 너를 아조 싫어하더라.

너는 짐짓 나의 심장(心臟)을 차지하였더뇨?
비애! 오오 나의 신부! 너를 위하여 나의 창과 웃음을 닫었노라.

이제 나의 청춘이 다한 어느 날 너는 죽었도다.
그러나 너를 묻은 아무 석문(石門)도 보지 못하였노라.

스스로 불탄 자리에서 나래를 펴는
오오 비애(悲哀)! 너의 불사조(不死鳥) 나의 눈물이여!

■출처 : '정지용 전집 1', 민음사(2006)

▲슬픔에 대한 치밀한 성찰이 담겨있는 시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지용의 또 다른 시, '유리창'의 차가운 도회적 지성이 탄생한 연유를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아들의 죽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식민지 가장의 무력한 아픔과 슬픔. 죄책감과 절망감…. 그럼에도 그 감정들을 털어놓고 의지할 데라곤 없는 암담한 현실에 대한 자각과 책임감이 감정을 냉각시키고 지성을 연마하는 계기가 되었을 게다. 거기엔 “스스로 불탄 자리에서 나래를 펴는” 의지적 지성의 견실함이 있다. 하지만 지나친 감정의 억압과 배제는 생명력의 왜곡과 고갈을 가져온다. 지금 우리의 도시에는 그런저런 연유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정의 유리창과 석벽에 갇혀 시들어 가고 있는가? “비애를 돌려보낼 아무 이웃도 찾지 못하여” “행복이 너를 아주 싫어하여”…. 정신분석에서는 현대인의 이러한 경향을 ‘정상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특히 이러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서둘러 슬픔을 냉각시키고 아픔을 봉합하기에 급급한 사회, “나의 가장 안에서 살아있는” “슬픈 울음과 아픈 몸짓”을 담아내지 못하는 개인과 사회는 결코 건강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정지용(鄭芝溶)
△1902년 충청북도 옥천군 출생, ?년 영면.
△휘문고등보통학교, 일본 동지사대학 영문학과 졸업.
△1919년 '서광(曙光)'에 소설 '삼인(三人)' 발표하면서 등단.
△동인지 '요람' 간행, '휘문' 창간호 편집위원, '시문학' 동인, '구인회' 결성, '가톨릭청년' '경향잡지' 편집위원, '문장' 심사위원 활동.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사, 경향신문사 주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강사 역임.
△1950년 한국전쟁시 납북.
△시집 : '정지용시집' '백록담' '지용시선' '정지용 전집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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