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진하

▲ 고진하 시인.
하루 종일 입을 봉(封)하기로 한 날,
마당귀에 엎어져 있는 빈 항아리들을 보았다.
쌀을 넣었던 항아리,
겨를 담았던 항아리,
된장을 익히던 항아리,
술을 빚었던 항아리들,
하지만 지금은 속엣것들을 말끔히
비워내고
거꾸로 엎어져 있다.
시끄러운 세상을 향한 시위일까,
고행일까,
큰 입 봉(封)한 채
물구나무 선 항아리들,
부글부글거리는 욕망을 비워내고도
배부른 항아리들,
침묵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른 항아리들!


■출처 : '호랑나비 돛배', 지식을만드는지식(2012)

▲"완덕(完德)이 무엇이며, 그 절정(絶頂)이 어디뇨? 완덕(完德)은 점성(點性)에서 시작하고, 그 절정(絶頂)은 면형(麵形) 무아(無我)에 있도다." 가톨릭의 '한국순교복자수도회'의 창설자인 방유룡 안드레아 신부는 이처럼 가톨릭 영성에서 완덕의 절정을 불교 영성인 무아와 같은 것으로 봄으로써 동·서 영성을 꿰뚫는 통합영성의 기틀을 마련했다. 점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일상의 존재로서 우리가 매순간 깨어서 겸손하게 자신을 성화시켜 나간다면, 그리스도의 몸이 된 밀떡의 형상인 면형(麵形)을 통해 인간적인 나쁜 생각과 나쁜 마음이 없어진 무아(無我)의 경지에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침묵이다. 침묵대월(沈黙對越), 즉 침묵은 나쁜 마음과 죄 되는 모든 것을 뛰어 넘어 하느님께 다가서는 길이요 방편이다. 이때의 침묵은 단순히 말이 없는 무언(無言)의 상태가 아니라 의지적인 희생이요 '고행'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묵언(黙言)'은 방 신부가 완덕의 길로 제시한 침묵과 상통한다고 하겠다. 말이 말을 낳고 말이 말을 새끼 쳐서 말의 오라와 거미줄에 휘감겨 꼼짝할 수 없게 될 때가 있다. 저마다 '쌀' '겨' '된장' '술'과 같은 아상(我想)에 사로잡혀 '항아리'로써의 본질, 더 나아가 흙으로서의 본성을 망각할 때가 있다. 이럴 땐 '묵언'으로 '물구나무'를 서 볼 일이다. "침묵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를" 수 있을 때까지, '물구나무'가 한 그루 나무가 되어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 때까지….

■고진하(아호: 모월산인(母月山人))
△1953년 강원 영월군 출생.
△감리교신학대학교 및 동대학원 졸업.
△1987년 '세계의 문학'에 '빈들' 외 5편으로 등단.
△'기독교사상' 편집부, 홍천·강릉 등지에서 목회자, 이화여대, 감신대 교수 역임.
△현 한살림교회 목사, 숭실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김달진문학상, 강원 작가상, 영랑시문학상 수상.

△시집 :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얼음수도원' '수탉' '거룩한 낭비' '호랑나비 돛배' '꽃 먹는 소' '명랑의 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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