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적 사례를 볼 수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이로써 조 회장은 1999년 고(故)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수장이 된지 20년 만에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대한항공은 27일 서울 대한항공 본사에서 제57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최고의 관심사는 단연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이었다. 해당 안건은 의결권 있는 주식 64.1%가 찬성했고, 35.9%가 반대표를 던져 부결됐다. 대한항공은 정관에서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66.6%)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날 대한항공의 2대 주주 국민연금은 "조 회장이 기업 가치 훼손 및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며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의사를 밝히며 조 회장의 연임 실패는 어느 정도 예상됐다. 조 회장의 불투명한 기업경영, 그 가족의 '갑질' 논란 등이 대다수 주주들로부터 등 돌리게 한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은 국민들 기억 범위 내 '원조 갑질'이라고 할 수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는 최근 한층 강화된 주주권 행사에 따라 대기업 총수가 경영권을 잃는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그만큼 지도층과 '있는 집안' 인사들의 사회적 책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확립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 권력이 정부로부터 시장, 기업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사실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 (WTO)는 윤리경영을 자유무역기조의 핵심 요소로 제시하고 있다. 이제 모든 기업들이 평등한 조건에서 건전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있어 윤리경영은 필요조건이 된 것이다. 윤리경영의 방향 또한 중요하다. 단순히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소극적인 자세를 넘어서 회사의 핵심 목적과 가치, 그리고 사회법규 준수를 통해 고객 만족을 이끌어 내 더 많은 성과를 창출해야 하는 것이다.
대한항공 이사회는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JV) 조기 정착,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총회의 성공적인 서울 개최 등을 위해 항공전문가인 조 회장의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조 회장 경영권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의 '공백'을 조기에 메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적항공사로서 실추된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기회로 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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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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