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남수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방공호(防空壕) 위에
어쩌다 핀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다.

호(壕) 안에는
아예 들어오시질 않고
말이 숫제 적어지신
할머니는 그저 노여우시다.

― 진작 죽었더라면
이런 꼴
저런 꼴
다 보지 않았으련만……

글쎄 할머니,
그걸 어쩌란 말씀이셔요.
숫제 말이 적어지신
할머니의 노여움을
풀 수는 없었다.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인제 지구(地球)가 깨어져 없어진대도
할머니는 역시 살아 계시는 동안은
그 작은 꽃씨를 털으시리라.

■출처 : ‘박남수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2012).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희망의 손길을 멈추지 않으려는 ‘할머니’의 의지가 ‘채송화 꽃씨’처럼 반짝인다. 이 시는 6.25 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손자의 관점에서 쓰였다. 시에 등장하는 인물은 할머니와 손자뿐이고, 아들 세대는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참전 중임을 암시한다. 우리는 ‘노여우시다’는 ‘할머니’의 감정과 “글쎄… 어쩌란 말씀이셔요.”라는 손자의 말을 통해 무력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진작 죽었더라면 / 이런 꼴 / 저런 꼴 / 다 보지 않았으련만” 하는 탄식이 근심과 원망 섞인 할머니의 마음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그것은 “이런 꼴 / 저런 꼴 / 다 보”게 되는 할머니의 자리를 드러내 주기도 한다.

‘할머니’라는 자리. 그것은 모든 것을 다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리, 하지만 그 비좁은 곳에서도 넓고 큰 사랑을 하는 자리가 아닐까. 할머니는 ‘방공호’에 들어가 몸을 숨길 생각은 하지 않고 ‘호’ 밖에서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다.” “꽃씨를 받는” 것은 생명의 씨앗을 보존하는 행위로써 전쟁과 대비된다. ‘채송화 꽃씨’는 그중에서도 가장 작은 꽃씨로 전쟁이라는 한계상황에 처한 할머니의 작지만 아름다운 선택을 두드러지게 한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한계 내에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책임지는 존재다. 우리에게 다시는 전쟁과 같은 불행이 닥쳐서는 안 되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방공호에만 숨어있을 것인가 호 밖에 나와 꽃씨를 받을 것인가.

6·25 발발 70주년을 맞았다. 국립묘지 하얀 비석들과 70년 만에 봉환되어 돌아오는 북녘에 있던 국군전사자 유해들은 편히 쉬지 못한 채 그날을 기억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느덧 아직 끝나지도 않은 전쟁을 망각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뇌 과학자들에 의하면 우리의 기억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시냅스 구조인데, 자주 찾지 않는 시냅스는 마이크로글리아 면역세포가 청소하여 버리므로 망각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래서일까. 유대인들은 지금도 해마다 무교절에는 칠 일 동안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으며 출애굽 당시의 고난을 기념한다고 한다. 광복의 기쁨과 함께 고난을 기억하지 않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기 때문이리라.

이 시에서는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는 구절의 반복을 통해서 절망적 상황에 대한 초극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평안남도가 고향인 시인이 월남한 후 일어난 6·25 전쟁 직후 발표한 이 시는 아마도 전쟁 중에 쓰인 작품으로 보인다. 시인으로서 이러한 시를 쓰는 것은 할머니가 꽃씨를 받는 것과 같은 행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할머니와 시인이 받아놓은 꽃씨가 남과 북, 대한민국 온 나라를 채송화 꽃으로 뒤덮는 그날이 오기를 꽃씨를 받는 마음으로 기원한다.

■박남수(朴南秀)
△1918년 평안남도 평양 출생, 1994년 영면.
△평양 숭실상업학교, 일본 주오대학 법학부 졸업.
△1939년 ‘문장’에 ‘심야’ ‘마을’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
△‘적치 6년의 북한 문단’ 간행, ‘문학예술’ 주재, 유치환·조지훈·박목월 등과 ‘한국시인협회’ 창립.
△조선식산은행 평양지점장, 한양대학교 국문과 강사, 미국에서 과일 장수 역임.
△1951년 1.4후퇴 때 월남, 1975년 미국으로 이민.
△제5회 아시아자유문학상, 1994년 공초문학상 수상.
△시집 : ‘초롱불’ ‘갈매기 소묘(素描)’ ‘신(神)의 쓰레기’ ‘새의 암장(暗葬)’ ‘사슴의 관(冠)’ ‘서쪽, 그 실은 동쪽’ ‘그리고 그 이후’ ‘소로(小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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