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피 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 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을 한마디로 간명하게 표현한 글이다. 이글은 학생운동 발상지인 광주제일고등학교 교정에 자리잡은 학생탑 정면에 새겨 있다. 역사가 돌고 돌아 학생의 날이 다시 찾아왔는데도 국민적관심이 날로 줄어들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일제 강점기 독립투쟁에 앞장섰던 선열들의 나라사랑과 고귀한 희생을 오늘에 되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 다시는 그런 비극을 겪지 않으려면 당시를 바로 알고 마음의 자세를 다져야 한다.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억지를 쓰는 일본, 고구려역사를 자기네 거라고 꼼수를 부리는 중국에 당당하게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우리 역사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가정에서 학교에서 장래 나라의 주인이 될 아이들에게 제대로 알려 줄 수 있지 않겠는가?

11월3일, 이 날은 지금으로부터 83년전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날이다. 3.1독립만세 운동 후 10년 후에 터진 대사건이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태동은 당시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현 광주일고), 광주공립농업학교(현 광주농고),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 등 광주지역 학생들이 "조선민족을 일본제국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성진회(醒進會), 독서회(讀書會), 소녀회(少女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한데서 비롯되었다. 이 단체들은 동료 학생들에게 독립의식을 고취시켰고, 일제에 항거하여 몇 차례의 동맹휴학을 강행하면서 단결력을 키웠다.

이러한 독립의식과 단결력은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발생한 조선여학생희롱사건이 발단이 돼 11월 3일 대규모 항일시위를 전개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우발적인 한·일 학생간의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다. 축적된 민족의식과 독립의지의 적극적인 표출이며, 일제의 탄압과 착취, 차별교육에 대항한 민족운동이었다. 광주에서 불을 지핀 항일 시위가 다른지역으로 확산됐다. 전국에서 194개 학교에서 54,000여명의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대규모 저항이었다. 일제의 간담을 써늘케 하고 우리 민족의 기상을 세계만방에 알린 위대한 민족운동이었고 이 나라 학생운동의 뿌리가 되는 대단한 사건이었다.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잊지 못할 이러한 대규모 항쟁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점차 잊혀져 이제는 학생운동의 발상지인 광주일고와 관계자들 및 광주광역시 일원만의 조촐한 기념식과 기념행사로 끝나는 감이 있어 안타깝다. 학생의 날 기념식이나 행사도 전국방송, 서울에서 발행되는 일반신문이나 포털사이트가 별로 다루지 않고 넘어가는 경향이다.

이래서는 안된다.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민족혼을 깨우쳐 주고 선열들의 나라사랑하는 마음과 고귀한 희생정신을 가르치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책무가 아닐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러한 당연한 책무를 저버리고도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이건 큰 문제다. 시급히 고쳐야만 어른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 본다.

광주학생독립운동과 학생 탑에 스며 있는 선열들의 고귀한 뜻과 희생정신을 오늘에 되살릴 수는 없는 것인가? 과거 독재정권 때는 정치권에 대한 젊은 학생들의 저항을 비켜 가자는 얄팍한 생각에서 학생의 날을 의식적으로 폄하하고 푸대접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민주화가 성숙한 오늘에도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거룩한 정신이 한 지역만의 단출한 행사로 그치야 하는지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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