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그 길을 모색하다' 시리즈 - 1부

원자력발전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세계 5대 원전 강국의 위상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수많은 원전 인력들이 스스로를 불태워 만든 기적과 같은 결과물이었고,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고장, 납품비리 등이 연일 터지면서 원전의 위상은 곤두박질쳤고, 원전인력들은 범죄자처럼 매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잘못된 점은 드러내 개선해야겠지만, 작금의 상황은 ‘침소봉대(針小棒大)’나 다름없다.

‘어려운 때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격언을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시리즈를 기획했다. ▲1부-경제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 원전 ▲2부-넓고 깊고 멀리봐야 할 원전 순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고리원전 1호기 도입후 수출 2800배 증가...석유수급 갈수록 어려워져

한국형표준원전에 맺힌 눈물...전력생산 31% 전담하며 23기 가동중

[일간투데이 선태규 기자] ◆‘두뇌의존형’ 에너지 원전

원자력은 핵분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생기는 에너지를 말한다.

원자력발전은 우라늄이 핵분열할 때 나오는 열로 증기를 만들어 그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시설이다. 물의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들면 수력발전이고, 석유나 석탄을 때서 물을 끓이고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면 화력발전이듯, 원전도 전기생산 원리는 같다.

원전은 경제성과 환경성을 갖추고 있다. 1그램의 우라늄235가 완전 핵분열 했을 때 나오는 에너지는 석유 9드럼 또는 석탄 3톤이 탈 때 나오는 에너지와 비슷하다. 100만kW급 발전소를 1년간 운전하려면 석유 150만톤이 필요하지만 우라늄은 20톤이면 가능하다는 얘기다.

환경성 측면에서 보면, 세계에너지기구(IEA)의 ‘세계에너지전망 2009’는 장기적으로 CO2 농도를 450ppm으로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온실가스 감축수단이 필요한데, 2030년까지 원자력이 동일 비용대비 CO2 감축효과가 가장 우수하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 원자력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장은 ‘원자력’에 대해 “대자연 혹은 신이, 인간 몰래 원자의 1만분의 1밖에 안되는 극미의 원자핵에 감추어 두었다가 인류를 위한 축복으로 준 청정에너지가 바로 원자력이다. 원자력은 자원 의존형이 아닌 두뇌 의존형의 에너지이다.”라고 정의했다. 마지막 문장에는 원전 ‘불모지’를 원전 ‘대국’으로 일구어낸 기적의 역사가 담겨 있다.

◆불가피한 국가적 선택 ‘원전’, 기적을 만들다

1948년 5월14일 기억하고 있는가. 이날은 북한이 남한에 송전(送電)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날이다. 당시는 대부분의 전기를 수력으로 발전할 때였고, 수력발전소는 주로 북한에 있었다. 북한의 단전으로 한국은 하루아침에 전기없는(?) 나라로 전락했다. 북한이 단전하자, 미국은 발전함인 일렉트라함(6900kW)을 인천항에, 자코나함(2만kW)을 부산항에 보내 전기를 공급했다. 한국의 사정은 당시 그만큼 절박했다. 그로부터 57년 후인 2005년 3월16일, 우리는 북한의 산업시설 가동을 위해 개성공단에 전기를 공급하게 됐다.

배고픔과 가난이 상식으로 통하던 1959년에 이승만 대통령은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했고, 에너지 자립의 중요성을 염두에 둔 박정희 대통령은 원전 건설을 추진해 1978년 4월 고리 원전 1호기를 준공했다.

1964년 1억달러에 불과하던 우리나라 수출은 1977년 100억달러를 달성했다. 그러나 고리원전 1호기를 준공한 1978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성장에 들어가 2005년에는 2800억달러를 넘어섰다. 40년만에 수출이 2800배 증가했다. 국민소득은 1960년대 초 80달러에서 2005년에는 200배가 넘는 1만6000달러에 도달했다. 2012년 현재 국민소득은 2만3159달러, 수출은 5481억달러다.

세계 석유현황을 살펴보면, 1980년 한 해에 3만2639개의 유전이 개발됐으나 2000년에는 21%에 불과한 6904개가 개발됐다. 유전의 평균 깊이는 1980년 3810피트였으나 2004년엔 5249피트로 깊어졌다. 기름 채취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전세계가 지출한 연간 석유개발비는 2000년 631억달러였으나, 2004년에는 1174억 달러로 증가했다. 1배럴당 생산비도 4년 만에 4.94달러에서 8.61달러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석유 수급 전망은 불투명한데 우리의 석유 소비량은 산유국인 영국보다 많다.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같은 인구(人口) 대국의 빠른 경제성장은 세계의 석유 수급 상황을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국민의 정부시대인 1998년 9월 울진 3호기 준공식 및 울진 5·6호기 기공식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이 "정부는 늘어나는 전력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원전 위주로 에너지 정책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고 발언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원전 도입은 “에너지의 97%를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는 고유가 시대를 어떻게 버틸 것인가”라는 ‘선견지명’의 고민으로부터 비롯됐다.

▲ 2011년 7월18일 오후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원전 4호기에서 공사 관계자들이 원자로 설치를 기념하고 있다. (제공=한국수력원자력)

◆한국형표준원전, 3년만의 결실...원전 강국 초석을 놓다

우리나라 원전건설은 ▲외국기술 의존기 ▲기술축적기 ▲기술자립기 ▲기술선진화기 ▲기술독립기로 나눌 수 있다. 외국기술 의존기에는 외국계약자 일괄도급계약으로 고리 1·2호기, 월성 1호기가 건설됐다. 기술축적기에는 외국계약자가 분할 발주하고 국내업체가 하도급으로 참여했고, 고리 3·4호기, 영광 1·2호기, 울진 1·2호기가 이 시기에 지어졌다. 기술자립기에는 한국전력이 사업을 주도하고, 국내업체가 주계약자로 참여했다. 이 시기에 한국표준형원전이 개발됐고, 영광 3·4·5·6호기, 월성 2·3·4호기, 울진 3·4·5·6호기가 건설됐다. 한국표준형원전 개발과 관련한 일화가 있다.

이 시기 전까지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사가 경수로를 지어왔다. 그때 미국의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E)사가 자사의 한 모델을 마음대로 개량해 생산·판매하는 데 동의했고, CE사가 최종 선정됐다. 하지만 CE사는 당초 약속했던 핵심기술 이전을 기피했다. “핵심기술을 이전해주지 않으면 철수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낸 뒤에야 매듭이 풀리기 시작했고, 연구진들의 피눈물나는 노력 끝에 3년 만에 한국형표준원자로가 빛을 보게 됐다.

기술선진화기에 접어들어 개선형 한국표준형원전 OPR1000과 차세대 신형경수로 APR1400의 개발이 이뤄졌다. 현재는 기술독립기로, APR1400의 후속 로형인 APR+개발, 미확보 핵심기술인 원자로냉각재 펌프(RCP), 원전계측제어설비(MMIS), 원전설계핵심코드(노심설계코드, 안전해석코드) 등의 국산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13년 1월말 현재 국내에는 23개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다. 설비용량은 2만0716MW다. 원자력 발전설비 점유율은 국내 전체 발전설비 용량인 7만9432MW(2100년 말 기준)대비 23.6%로, 국내 최초 원전인 고리1호기(587MW)가 상업운전을 개시한 이래 31배 증가했다. 설비용량면에서는 세계 5위 수준이다. 원전은 전력생산량 중 약 31.1%를 전담하고 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2013년 1월말 현재 우리나라는 5기의 원전을 건설 중에 있으며, 4기의 원전이 건설 준비중이고, 2기의 원전이 건설계획 중에 있다. 건설중인 원전으로는 개선형 한국표준형 원전(OPR1000)으로 건설되는 신월성 2호기가 있고, 신형경수로1400(APR1400)로 건설되는 신고리 3·4호기 및 신울진 1·2호기가 있다. 건설준비중인 원전은 신고리 5·6호기와 신울진 3·4호기다. 신고리 7·8호기(노형 미확정)는 계획 중에 있다.

◆가압경수로, 가압중소로 형태로 국내서 23기 운영중

원자력발전소의 핵심 설비인 원자로는 크게 ‘경수로’와 ‘중수로’로 나뉘고, 중성자를 감속시키는 감속재와 에너지 이용 방법 등에 따라 가압경수로(경수로), 가압중수로(중수로), 흑연로, 비등경수로, 고속증식로 등으로 구분한다. 국내에서는 가압경수로와 가압중수로 등 2가지 형태의 원자로를 운영 중이다. 총 23기의 원자로 중 19기가 가압경수로이며, 월성의 4기는 가압중수로이다.

▲가압경수로

현재 세계 원전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다. 냉각재와 감속재로 일반 물인 경수(H2O)를 사용하며, 연료로는 핵분열이 가능한 우라늄 235가 2~5% 들어 있는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한다. 냉각재(물)에 높은 압력을 가해 고온(약 300℃)에서도 액체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며, 이것이 열교환을 통해 2차 계통의 물을 증기로 만든다.

가압경수로는 원자로와 증기발생기가 격납건물 안에 있으며, 원자로를 순환하는 1차 계통(방사성물질 포함), 증기발생기를 순환하는 2차 계통(방사성물질이 들어 있지 않은 물), 그리고 복수기를 순환하는 3차 계통(방사성물질이 들어 있지 않은 바닷물)으로 구성돼 있다. 원자로 속에 들어 있는 냉각재에 압력을 가해 150기압 300℃ 정도를 유지하고, 이 냉각재가 증기발생기 세관을 통과하면서 증기발생기 측의 물을 끓여 수증기를 만들어 터빈을 돌리게 되어 있다.

▲가압중수로

캐나다에서 개발해 캔두(CANDU) 라고도 불리는 원자로로, 냉각재와 감속재로 중수(D2O)를, 연료로는 천연우라늄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천연우라늄을 연료로 쓰고 있어 핵분열 확률을 높여주기 위해, 감속재로 경수보다 중성자의 속도를 더 잘 감속시켜주는 중수(보통의 물보다 분자량이 큰 물)를 사용한다. 보통 별도의 운전정지 없이 매일 일정량을 교체하기 때문에 경수로보다 연료의 이용률이 높다.

▲비등경수로, 흑연로, 고속증식로

3가지 모두 우리나라에는 없는 로형이다. 비등수로는 감속재와 냉각재로 물을, 연료로 저농축 우라늄을 각각 사용한다. 가장 큰 특징은 증기발생기가 따로 없어 원자로가 증기발생기 구실을 겸한다는 점이다. 냉각재가 바로 증기가 되는 것이다. 원자로 상부에서 만들어진 증기가 직접 터빈을 때리므로 터빈계통으로 방사능이 유출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이 이 로형이다.

흑연로는 감속재로 흑연(黑鉛)을 사용한다. 흑연은 중성자를 비교적 빨리 감속시키고 값이 싸서 대량으로 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흑연 원자로는 연료로 천연 우라늄이나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하고 냉각재로는 탄산가스나 경수를 사용한다. 그러나 흑연은 중수에 비해 중성자를 감속시키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많은 양이 소요돼 원자로의 부피가 매우 커야 한다. 탄산가스를 냉각재로 사용하므로 열전달 효율이 낮아 증기발생기를 매우 크게 설계해야 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 원자로는 1986년 4월25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는 대형 사고를 일으켰다.

고속증식로는 고속중성자를 이용해 핵분열반응을 일으켜 에너지를 생산함과 동시에 우라늄 238을 플루토늄 239로 변환시키는 원자로다. 고속증식로는 중성자 속도가 고속이며, 우라늄 238을 새로운 플루토늄 239로 만들면서 처음 플루토늄의 양보다 더 많은 플루토늄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고속증식로에서 쓰이는 냉각재인 ‘액체나트륨’은 물이나 공기와 결합하면 화재를 일으키고 파이프를 쉽게 부식시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때문에 프랑스, 독일 등은 고속증식로 가동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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