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그 길을 모색하다' 시리즈 - 2부

원전 운영의 모체인 한국수력원자력에 ‘혁신’이 꿈틀거리고 있다.

‘과거 반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과거는 작년이 아니라 전력산업구조개편으로 한수원이 독립·운영됐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10년여년 간의 기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혁신 또한 최소 10년 이상의 어느 시점을 보며 단계적으로 진행중이다.

‘냉정한 현실인식’과 함께 넓고 깊게 멀리 보는 ‘안목’이 필요한 시기다. ‘시리즈 2’는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마련됐다. <편집자 주>

세계 각국 원전 기조 큰 변화 없어...한국, 2020년까지 10기 수주 목표

한수원, ‘인사’ 중심 대대적 쇄신...올해 의식개혁 추진

원전 위험성 증폭 우려...인력배치시 기술적 특성 고려해야

 

[일간투데이 선태규 기자] ◆세계 각국, 원전기조 유지...일본조차 수출에 눈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 각국은 ‘안전’에 각별히 신경쓰고 있으나, 원전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는 모습이다. 오히려 수출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원전 폐쇄 방침을 결정한 일부 유럽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 미국, 소형모듈형 원자로 수출 주력

미국은 현재 103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세계 최대 원전 설비국가다. 스티븐 추 에너지부 장관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親원전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출력 증강 및 신규 인허가 승인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고, 소형모듈형 원자로의 해외 수출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에선 현재 1기(WATTS BAR-2)의 원전이 건설되고 있다.

▲ 러시아, 2030년까지 102기 원전 건설

2013년 3월 현재 러시아의 가동원전은 33기이며, 러시아 전체 전력의 18%를 원전으로 생산하고 있다. 러시아는 국영기업인 로사톰사의 주도하에 원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자국 뿐 아니라 해외 원전사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러시아는 2030년까지 자국에 42기, 해외에 60기 등 모두 102기의 신규 원전을 건설할 계획이며, 이는 세계원자력협회(WNA)가 2030년까지 예상한 신규원전 수(237기)의 43%에 해당한다. 또한 정부는 지금을 원전의 해외수출 확대 적기로 보고 있다. 자국의 원전 건설계획은 예정대로 추진 중이다.

▲ 프랑스, 원전정책 유보

2013년 3월 현재 프랑스는 58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으며, 발전량의 75%를 원전으로 생산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력 수출국인 프랑스는 2012년 6월 시회당이 집권하게 됨에 따라 탈원전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됐다. 올랑드 대통령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원전 비율을 줄이는 정책에 찬성하고 있으며, 단기적으로 Bugey 2호기의 계속운전 승인 등 원자력 정책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중국, 2050년까지 설비용량 40만MW까지 증대

2013년 3월 현재 중국의 가동원전은 18기이나 전체 발전량의 2%에 그치는 미미한 수준이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이산화탄소 배출국가로 세계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의 이산화탄소 배출점유율이 2020년에 14%, 2030년에는 19%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중국은 원자력 발전비중을 높이려 하고 있으며 원전 설비용량을 2020년까지 8만MW, 2030년까지 20만MW, 2050년에는 40만MW까지 증대시킬 계획이다. 중국은 현재 28기의 원전을 건설하고 있으며, 원전 설계, 건설, 연료주기 사이클 등 모든 분야에서 자립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 2개 호기 재가동...정부차원 수출 지원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지난해 5월5일 50개의 모든 원전을 정지시켰다. 하지만 7월에 Ohi 3호기를 재가동했고, 현재는 2개 호기가 운전 중이다. 일본의 10개 발전사업자는 최근 원전의 가동중지로 인한 대체 발전원 소요 비용 추정 손실액이 총 20조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신재생에너지 위주로‘에너지 기본계획’을 재검토하고 있으나, 아베 내각 출범 이후, 자국 기업의 원전 해외 수출을 지원하고 신규 원전 건설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는 지난해 2월21일 본부 대강당에서 전 직원이 모인 가운데 'BEST 청렴 사업장 구현'을 위한 반부패 청렴결의대회를 개최했다.(제공=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

◆한수원 ‘신뢰회복’ 목표로 ‘혁신’ 추진...올해 ‘의식개혁’ 집중

한국도 원전 기조에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2020년까지 10기의 해외원전 수주를 목표로 하고 있고, 올해에는 핀란드 원전, 남아공 원전에서 좋은 소식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중장기적인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국민신뢰 회복’이 목표다.

한수원은 현재 ▲원전설비의 기술적 안전성 ▲안전한 원전 운영관리 등에 주력하고 있고, ▲원전 건설·운영·정비 등 전 과정에 대한 품질관리체계 확보 ▲정부의 전력 공기업 관리체제 재정립 등을 차기 추진과제로 상정해 놓고 있다.

지금까지 추진했던 구체적 과제는 ▲비리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외부인사 영입 등 인사제도 전면 개편 ▲업무프로세스 혁신 ▲본사 슬림화 및 현장 인력 강화 ▲원전 특별점검 ▲안전 최우선에 기반한 원전 운영체계 정립 등이다.

한수원은 부패 척결을 위해 고위직 퇴직자 협력사 취업 금지(3년), 비리 적발업체 영구 퇴출 등을 골자로 한 ‘윤리행동강령을 제·개정했다.

정부는 한수원의 근본 문제로 ‘후진적인 인사시스템’을 지목하고 있다. 지금까지 학연·지연 등과 함께 상사의 의견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외부인사 확대 등은 이를 쇄신하기 위한 것이다. 한수원은 지금까지 고위간부 11명을 사내·외 공모해 그 중 7명을 외부에서 영입했다. 1차로 기획본부장, 경영혁신실장을, 2차로 울진본부장, 자재센터장, 품질보증실장, 해외사업처장을 각각 채용했다. 또 법무분야 3명, 언론분야 2명, 기동감찰분야 1명, 기술분야 3명 등 총 12명의 외부전문가도 등용했다. 이와 함께 능력·성과중심의 투명한 인사 보상체계 확립 차원에서 MBO 성과평가를 2·3직급으로 확대했고, 추천승격제를 폐지했다.

업무프로세스 혁신 차원에서 자재는 본사에서 통합·구매토록 했고, 업체관리(품질부서), 구매시방서(원전본부), 구매(자재부서)기능을 분리하는 한편 자재의 라이프 사이클 추적관리를 위한 IT시스템을 구축했다.

한수원은 현재 품질·정비·건설관리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있으며, 이달 말까지 자재·품질 BPM을, 내달 말까지 정비·건설 BPM을 각각 구축·운영할 예정이다.

한수원은 또 본사 조직을 3처·실 15팀으로 축소하고 잔여인력을 현장 배치했으며, 사장 직속의 사업소를 본부장 산하조직으로 재편, 책임경영체제를 구축했다. 자재 구매·관리 통제 강화를 위한 ‘구매사업단’도 신설했다.

한수원은 특히 20년 이상 가동 원전의 취약설비 교체방안을 수립했으며, 2016년까지 약 1.1조원을 들여 257건(기계 116건, 전기 78건, 계측 63건)에 대한 작업을 실시할 방침이다. 또 안전 최우선의 원전 운영체제 정립을 위해 경영평가에 안전지표를 신설했고, 가중치를 확대했다.

한수원의 올해 목표는 의식개혁이다. 의식개혁은 능력 중심의 인사, 소통을 통한 사내 폐쇄성 극복 등을 기본으로 과거의 ‘자부심’을 되찾기 위한 과정이다. 1단계로 제도나 관행을 고쳤다면, 2단계로 구성원의 ‘의식’을 혁신하는 절차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인재개발원의 교육체제를 인성·윤리, 리더십, 직무교육 체제로 개편하고, 팀별 불씨 550명을 선발해 현장 단위조직의 변화를 이끌도록 했다.

◆혁신이 오히려 ‘원전위험성 증폭(?)’...인사시 기술적 특성 고려해야

한수원의 대대적 조직 쇄신이 ‘원전 위험성’을 오히려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원전 특유의 기술적 특성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원전은 크게 경수로와 중수로로 나뉘지만, 설계개념으로 보면 4가지 형태를 띤다. 미국 웨스팅하우스(고리 1호기 등), 미국 CE사(영광 1·2호기 등), 캐나다 ACL사(월성 1·2·3·4호기), 프랑스 프라마톰사(울진 1·2호기) 등이 각각 설계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반적인 흐름은 비슷하지만, 부품부터해서 세부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부품의 경우 증기터빈을 예로 들면, W-△60(고리 1호기), W-F(고리 2·3·4호기, 영광 1·2호기), F-51B(울진 1·2호기), OPR1000(신고리 1·2호기), CANDU 600(월성 1·2·3·4호기) 등이 각각 쓰이고 있다.

세부적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원전의 1·2차 계통 중 핵심인 2차 계통을 예로 들어보자.

원전의 2차 계통은 고압터빈-저압터빈 3개-발전기를 기본 구조로, 각 저압터빈은 복수기와 연결돼 있으며, 복수기는 저압히터와 고압히터를 거쳐 증기발생기와 맞물려 있고, 증기발생기는 고압터빈과 연결돼 증기 순환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가열된 증기가 저속터빈을 돌리며 전기를 생성하고, 그 증기는 진공상태의 복수기를 거치며 액화된 뒤 저압·고압히터, 증기발생기를 거쳐 뜨거운 증기로 고압터빈에 주입되는 것이다.

발전소 기술자들은 보통 고참, 중간, 신참으로 나뉘며, 10년 이상된 고참이 핵심설비를, 중간 기술자가 보조설비를, 신참은 중간기술자를 따라 다니며 현장업무를 숙지한다. 계획 예방정비 기간이 1년 6개월에 1차례씩 찾아오기 때문에 계통을 이해하려면 최소 2번 정도 이를 겪어봐야 하며, 그것만해도 대략 3년이다. 고참 기술자 정도가 되면, 소리만 듣고도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바로 알고 신속히 대응조치를 취할 수 있다. 2차 계통의 경우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발전기(GEN), 터빈, 주급수 계통, 보조급수 계통, 복수 계통, 급수가열 계통, 수처리계통 등이다.

한수원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강제보직이동을 실시했다. 하지만 기술자들의 이러한 경험과 특성을 고려치 않고 진행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발생한 월성3호기 기기 오작동 사고다. 당시 해당 직원은 2010년에 입사했던 신참으로, 중간기술자를 따라 다녀야 할 시기에 바로 현장에 투입돼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다. 원전의 이 세부적 차이 때문에, 예를 들면 영광원전의 고참 기술자라도, 울진원전으로 갈 경우 신참 과정을 다시 밟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한수원은 ‘인사’를 기본으로 ‘혁신’을 꿈꾸고 있지만, 원전 최대 이슈가 ‘안전’인만큼 ‘인사’에 앞서 기술자들의 경험을 심각하게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렇치 않을 경우 원전 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 있고, 오히려 더 큰 사고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전 기술자들의 ‘경험’은 위기 때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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