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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한국과 베트남' <15>… 파병 최초 태극무공훈장4부 포화속에 사라진 호국영령들
  • 최용호 소장
  • 승인 2013.07.0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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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베트남’은 오늘부터 제4부 ‘포화속에 사라진 호국영령들’을 연재합니다.

1부-베트남의 역사와 전쟁, 2부-제2차 베트남전쟁, 3부-한국군 참전 및 철군에 이어 연재될 4부에서는 8년6개월에 걸친 한국군 참전 기간중 정글에서, 포화속에서 우방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젊음을 바친 영원히 잊지 못할 호국영령의 대표적 사례 10명을 소개합니다.

5000명에 달하는 전사자 모두가 소개할만한 명예로운 군인들이지만 지면관계로 극히 일부만 다루게 됨을 양해바랍니다. 이틀에 한번씩 다룰 본지 기획특집에 많은 성원 있으시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훈련중 수류탄 감싸안고 부하들 살린 고 강재구 소령

   
▲ 강재구 대위의 생전모습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최초의 태극무공훈장은 고 강재구 소령에게 추서됐다. 1965년 10월 4일, 강원도 홍천에서 파병을 위한 훈련 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을 감싸 안고 순직한 그의 살신성인 정신을 높이 평가한 것이었다.

◇ 수도사단의 편성과 훈련

정부는 1965년 8월 13일, 국회에서 전투부대 파병동의안이 통과됨에 따라 홍천에 주둔하고 있던 수도사단(맹호부대)과 포항의 제2해병연대(청룡부대)를 베트남파병을 위한 모체부대로 공식 지정하고 편성 및 훈련을 서둘렀다.

이어 8월 17일에는 채명신 소장을 주월 한국군사령관 겸 수도사단장으로 임명하고 연대장과 대대장, 중대장으로 이어지는 지휘관과 예하장병들의 선발을 서둘렀다. 병사의 경우는 신체조건, 학력, 가정환경 등을 고려해 선발했다. 장교는 국내에서 해당되는 직책을 경험한 우수자원을 선발하도록 했다. 그때 강재구 대위도 파병을 자원해 제1연대 제3대대 제10중대장으로 선발되었다. 그는 8월17일 전입과 동시에 부대편성과 함께 훈련을 서둘렀다.

8월 중에는 주로 부대편성과 보급품 획득 등이 중점적으로 이루어졌다. 9월이 되면서 4주간의 종합훈련이 시행되었다. 훈련은 각개전투 등 병 기본훈련으로부터 시작해 10월 초에 중대훈련까지 마치도록 계획되었다.

9월 초 종합훈련의 와중에 강대위는 청천병력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경기도부평(현 인천)에 사시는 편모가 별세하셨다는 소식이었다. 향년 48세이셨으니 지금으로서는 매우 희귀한 사례였으나 당시에는 그렇지도 않던 때였다.

당시 부대는 건군 이래 최초의 전투부대 파병을 앞두고 준비에 촌각을 다투고 있던 때였다. 그는 드러내놓고 모친의 별세를 슬퍼할 만한 여유도 없었다. 대대장에게 휴가를 요청하지도 못했다. 그때 강대위의 고등학교와 사관학교 동기생이던 제9중대장 용영일 대위가 그를 대신해 대대장 박경석 중령에게 모친의 별세 사실을 보고해준 덕분에 그는 장례식에 참석 할 수 있었다.

모친의 장례를 서둘러 마친 그는 3일 만에 다시 부대에 복귀해 슬픔도 잊은 채 훈련에 열중했다. 훈련이 거듭되면서 전후방 각지에서 모여들었던 각양각색의 병력들이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갖추어 나가면서 용맹스러운 맹호의 모습으로 변모해갔다. 취사병도 명사수가 됐고 행정요원도 전투요원과 차이가 없었다.

◇ 강재구 대위의 ‘살신성인’

그러던 10월 4일, 훈련의 마지막 과정인 중대훈련 과제로 수류탄 투척훈련이 시작되었다. 부임 전 제1군 하사관학교에서 수류탄 교관으로 근무했던 그는 누구보다 수류탄의 위력과 유의사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날 아침에도 강대위는 장교식당에서 만난 인접중대장들에게 자신이 수류탄 교관으로 근무할 때 훈련이 미숙한 명사가 놓쳤던 수류탄을 발로 차내 위기를 모면했던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수류탄 훈련 시 주의해야할 내용을 강조한바 있었다.

그런데 위기는 또 다시 발생했다. 이등병이 놓친 수류탄이 하필 중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떨어지고 말았다. 강재구 대위가 전에 경험했던 것처럼 발로 걷어 차낼 형편도 되지 못했다. 중대원 다수의 안전이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때 순간적으로 중대장의 경고가 내려졌다. “모두 피하라!” 이어 강대위가 자신의 몸을 날려 수류탄을 덮어 안았을 때 굉음과 함께 그의 몸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러나 강대위를 제외한 중대원들은 모두 무사했다. 부하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 살신성인의 희생정신! 보통사람이라면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살신성인의 실천이었다.

   
▲ 강재구공원과 기념관. 당시 수도사단의 훈련장이었던 홍천군 북방면 성동리에 설치돼 그의'살신성인'정신을 깨우쳐 준다.

◇ '재구대대'‘재구촌’과 ‘재구상’

강재구 대위가 산화한 후에도 국군의 파월은 차칠 없이 추진되었다. 10월 12일 오후, 여의도비행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주관한 파월장병 환송행사에 참가했던 제3대대는 10월 16일 10시, 부산항에서 베트남으로 출발했다. 그때부터 제3대대는 ‘재구대대’라는 특별명칭으로 불리게 됐으며, 베트남에서 주민들과 화합을 위해 건설했던 마을의 이름도 ‘재구촌’으로 명명했다.

육군본부와 육군사관학교는 ‘재구상’을 재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으며, 그의 모교인 육군사관학교와 서울고등학교, 그리고 그가 순직한 홍천군 현장에 그의 추모시설이 설치되어 그가 남긴 얼을 계승하고 있다. 정부는 그에게 태극무공훈장과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호국인물로 선정해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최용호 전쟁과평화연구소장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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