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포화속에 사라진호국영령들

위생하사가 전투지휘

많은 베트남 참전용사들은 용맹과 희생정신의 대표적인 영웅으로 고 지덕칠 중사를 지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강구(江口)전투’에서 수훈을 세운 영웅이다. 제2해병여단 제2중대 제3소대 위생하사관이었던 지덕칠 하사가 대대와 함께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성 동쪽 해안 빈쩌우(바딴간) 반도에 투입된 것은 1967년 2월 1일이었다. 강구전투는 내륙으로 연결된 강의 수심 등 수로를 측량하는 미군 수중탐사반 요원들을 엄호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 강구전투서 지휘관 전멸-부상불구 소대통솔

그날 아침 8시, 탐사가 예정된 쩌머이강 주변에 함포를 이용한 강력한 공격준비사격이 1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이어 헬기에 탑승한 제1대대 3개 중대가 강뚝을 따라 착륙하면서 수색작전이 시작되었다. 작전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성공적인 작전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의 희망은 너무도 안이한 것이었음이 곧 확인되었다.

문제가 발생한 곳은 지덕칠 하사가 속해 있는 제2중대 제3소대 지역이었다. 소대가 착륙한 후 대열을 정비해 계획된 목표를 향해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특이한 징후는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예기치 못했던 벼락과 같이 적의 집중사격이 시작되었다.

사방에서 귀를 째는 듯 ‘땈~땈~땈~’하는 소리가 진동했다. 그들은 교육을 통해 총소리가 ‘쀵~쀵~’ 할 때는 대부분 머리 위로 날아가는 소리이지만 ‘땈~땈~’하는 소리는 바로 주변에 지향되고 있어 매우 위험하다고 알고 있었다.

소대 전체가 적의 포위망에 갇힌 것을 직감한 소대장 박종길 소위는 즉각 증원을 요청하면서 후방으로 철수하려 했다. 그러나 적은 소대를 더욱 옥죄어 왔다. 그 과정에서 전사자와 부상자가 속출했다. 쓰러진 전우를 구출하던 지덕칠 하사도 부상을 입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부상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부상당한 전우를 구출하며 용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 지덕칠 하사의 활약과 전사

▲ 지덕칠 하사의 생전모습

소대의 악전고투가 계속됐지만 한 동안 상급부대의 지원은 없었다. 결국 2시간이 지나고서야 제1중대를 태운 헬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들은 적의 좋은 표적이었다. 베트콩의 대공사격이 불을 뿜기 시작하자 헬기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 와중에 헬기 1대가 착륙했고, 이어 피격된 1대가 불시착했다. 나머지는 헬기는 오던 길을 되돌아 기지로 날아가 버렸다. 그나마 착륙한 병력도 위치가 달라 소대에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증원이 실패한 후 소대는 무장헬기가 적에게 집중사격을 퍼붓는 틈을 이용해 탈출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 분대장들이 차례로 전사해 지휘부재 상태가 되었다. 소대장 박종길 소위는 부상당한 지덕칠 하사를 제1분대장으로 임명해 탈출을 지휘하게 했다. 무장헬기의 지원과 지하사를 비롯한 소대원들의 투혼에 힘입어 적의 포위망에서 벗어난 소대는 구호헬기를 요청해 부상자를 후송하기 시작했다.

먼저 6명을 헬기에 태웠다. 이어 지덕칠 하사의 차례가 되었다. 지하사는 온 몸에 8발을 맞았지만 한사코 양보하며 다른 전우를 먼저 후송시켰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져 두 번째 헬기의 도착이 지연되는 사이에 지하사는 출혈과다로 숨지고 말았다. 제3소대는 소대원 46명중 13명이 전사하고, 9명이 부상당했다. 제1중대의 증원병력도 14명중 5명이 전사하고 2명이 부상당해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 진해 해군 교육사령부에 위치한 고(강구전투서 지휘관 전멸-부상불구 소대지휘) 지덕칠 중사의 동상과 추모제 모습

◇ 문제점 많은 전투 교훈

지덕칠 하사가 투혼을 발휘했던 강구전투는 문제점이 많은 전투였다. 첫째, 여단차원의 문제로 지난해 12월부터 계속 연기되어오던 작전이었음에도 작전지역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둘째, 제1대대 역시 하루 동안 미군 탐색반을 엄호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출발했다. 주변수색도 지원화력의 범위 내어서 차근차근 확장해 나가야 했지만 적의 강력한 살상지대에 무방비 상태의 제3소대를 밀어 넣은 셈이 되고 말았다.

반면 적은 그들이 원하는 장소에서 그들의 의도대로 아군의 상태를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파악하면서 그들의 전력을 집중해 공격을 퍼부을 수 있었다. 제1대대는 소대가 고립된 후 증원병력도 헬기에만 의존했으며, 구출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적에게 새로운 표적을 제공해준 격이 되었다. 그때 만약 적과 접촉이 없었던 타 지역의 병력을 동원해 적의 후방을 역포위 했다면 소대의 구출은 물론 적을 섬멸하는 호기를 잡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덕칠 하사와 같은 살신성인의 투혼이 있었기에 제3소대는 전체가 몰살당하는 것을 겨우 면하고 철수할 수 있었다. 정부는 지덕칠 하사에게 1계급 특진과 함께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다. 해군은 진해 교육사령부에 고 지덕칠 중사의 동상을 세워 그의 용맹과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최용호 전쟁과평화연구소장 (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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