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장하는 대상은 여럿…인류건강에 ‘환장한’ 사람은?

▲ 서효석 편강한의원 대표원장

요즘 시절이 하수상하니 경기는 좋지 않고, 정치는 어지러우며, 청년실업은 백만을 넘어선지 오래됐다. 오늘은 그래서 심각한 이야기는 접어 놓고 재미있는 우리말 풀이로 독자의 마음을 잠시나마 위로할까 한다.

한때 ‘간 큰 남자’ 시리즈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무능한 남편이 아내에게 겁 없이 굴었다가 크게 혼나거나 이혼을 당한다는 그런 내용인데 가령, 30대의 간 큰 남자는 아내가 외출할 때 어디에 무엇 하러 가느냐고 묻는 남자이고, 40대의 간 큰 남자는 언제 들어오느냐고 묻는 남자이고, 50대의 간 큰 남자는 따라가도 되느냐고 묻는 남자라고 한다. 이렇게 무모한 용기를 지닌 남자를 가리켜 간 큰 남자라고 하는 이유는 간(肝)이 오행으로 보았을 때 목(木)에 해당하며 추진력에 관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결단력이 너무 지나쳐 무모한 언행을 함부로 할 때에 쓰는 관용적 표현이다. '간이 큰 것'보다 더 심한 표현이 '간뎅이가 부은 것'이요, 그보다 더 심한 표현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럼 '간에 기별도 안 간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 말은 먹은 것이 아주 적어서 모자랄 때 흔히 쓰는 말인데 음식물이 위로 가는 걸 생각하면 사실은 '위에 기별이 가지 않는다'고 해야 할 텐데, 왜 하필이면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라고 할까? 간사한 사람을 가리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라고 하는 말처럼 간과 쓸개는 그야말로 '딱 붙어' 있다. 그런데 소화에 매우 중요한 쓸개즙은 정작 쓸개(담낭)가 아닌 간에서 생성된다. 쓸개즙에 포함된 수분과 전해질은 위에서 작은창자로 넘어온 미즙(靡汁 : 음식물이 소화액과 섞인 것)을 중화시키는데, 이에 따라서 간은 엄연히 소화기관으로 분류된다. 게다가 간은 위(胃)보다 위쪽에 있다. '간에 기별'은 그래서 나온 말이다.

국정감사에 나온 증인들 중에 회사채를 불법으로 팔아서 서민에게 손해를 입히고도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변명으로 일관해서 '정말 비위도 좋은 인간'이라는 평을 들은 사람도 있다. 비위(脾胃)는 소화액을 분비하는 비장(脾臟)과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위장(胃臟)을 합친 말이다. 따라서 '비위가 좋다'는 말은 곧 속에서 마른 음식이든 진 음식이든, 깨끗한 음식이든 부패한 음식이든-그 어떤 음식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건을 갖춘다는 뜻이니, 상황이 여의치 않음에도 어떤 것을 끝까지 체면불구하고 먹으려는 사람, 즉 남의 이목을 의식하지 않고 제 잇속만 차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얼마 전에는 5백만원에 눈이 멀어 살인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도된 적이 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돈에 환장을 한 인간들'이라고 하는데, 환장(換腸)은 환심장(換心腸)의 준말이다. 환심장은 말 그대로 '마음과 내장이 다 바뀌어 뒤집힐 정도'라는 뜻이니 '어떤 것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정신을 못 차리는 지경이 됨'을 속되게 일러 '환장했다'고 하는 것이다. 환장하는 대상도 여러 가지일진대, 이 세상 모든 인류가 건강하게 백세까지 무병장수하는 길을 찾는데 몰두해서 동분서주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필자도 알고 보면, 인류 건강(人類 健康)에 ‘환장(換腸)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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