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구체적 현실 너머 보편적 '하늘' 관념 낯설어
천황 중심 수직적·보수적 정치 문화 전복 논리 약해
단군신화가 '천신'(天神) 신앙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애국가에 '하느님이 보우'하신다는 가사가 들어있으며 근대 종교의 선구자인 동학이 '한울님을 모신다'는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근간으로 발흥한 데서도 잘 볼 수 있다. 한국인의 하늘 정서는 큰 틀에서 한국의 종교 사상과 세계관의 근간에 놓여 있다. 그런데 옆 나라 일본의 상황은 다소 다르다.
지난호에 간단히 적은대로 윤동주의 '서시' 중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을 일본어로 번역할 때 다소 애를 먹이는 부분은 '하늘'이다. 하늘을 양심 혹은 도덕의 원천처럼 생각하는 한국적 정서에 딱 맞는 언어를 찾기가 애매하다. '天(텐)'으로 번역하자니 보통의 일본인에게 '天'은 '天皇'(천황, 텐노)의 '天' 이미지와 연결되기도 하고 '空(소라)'로 번역하자니 창공과 같은 물리적 공간의 의미가 더 다가온다.
일본 기독교에서는 윤동주의 '하늘'을 '天(텐)'으로 이해하고 표현하지만 보통 일본인의 정서와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식 '하늘'에 어울리는 언어를 찾기가 쉽지 않고 하늘 신앙이라 할 만한 정서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런 정서는 종교인 숫자에서도 확인된다. 일본에 기독교(가톨릭, 개신교)는 한국보다 훨씬 앞서 전해졌지만 그 숫자는 별로 없다. 가령 일본 인구 1억2600만명 중에 가톨릭과 개신교를 다 합한 기독교인 인구는 100만명 남짓이다. 그중에 개신교 인구는 40만명 정도다.
5000만 인구 중에 기독교인이 1000만명이 훨씬 넘는 한국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기독교를 강력히 제재하고 탄압하던 시절(전국시대)의 영향도 크지만 일본에서 기독교가 자리를 못 잡는 문화적이고 심층적인 이유는 기독교적 신앙의 근간인 '하늘' 정서가 약한 탓이다.
자신의 신앙이 기존의 그 어떤 것보다 상위에 있거나 더 보편적이라는 신념이 기독교적 선교의 동력인데 구체적 현실 너머에 대한 상상이 상당수 일본인에게는 낯설다. 일본에는 한국(과 중국)에 비해 '천(天)' 관념이 약하다. 그보다는 신도(神道)를 통해 전승되어 오는 구체적 정령 숭배 정서와 조상(선조) 숭배 전통이 더 강하다.
기독교 신앙의 대상인 신(God, 하느님)도 신도식 '가미(神)'에 존칭어를 붙인 '가미사마'(神樣)로 명명하고 받아들이다 보니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같은 선입견에서 자유롭기 힘들고 사물에 내재된 정령 같은 구체적 존재 이상으로 확장해 상상하기가 더 어려운 구조다. 현실적으로 힘이 더 센 존재를 숭배하는 경향이 한국보다 강하다. 이것은 일본인이 (한국인에 비해) 더 현실 지향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나무나 짐승 같은 자연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측면이 있는데 비해 일본인은 그 속에 들어있는 정령 같은 것을 연상하고 관련된 상상을 더 많이 한다. 그래서 자연물을 더 잘 관리하는 경향이 있다.(가령 분재나 일본식 정원은 자연물이되 정교한 인공적 자연물이다.)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상상력의 원천도 상당 부분 이런 정령 신앙에 있다. '하늘', '하느님'처럼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면서 구체적 사물의 힘을 전복시키는 보편 세계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조선의 유교가 관념적 성향이 강한 성리학에 집중한 데 비해 일본 유교가 구체적 성향이 강한 양명학을 더 많이 다루었던 것도, 상위의 추상적 하늘의 세계보다는 구체적 현실과 사물의 세계에 더 익숙한 일본의 정서적 혹은 문화적 상황을 보여준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보이는 사물과 영혼의 세계의 정점인 천황 및 천황제에 기반해 형성된 오늘의 수직적이고 보수적 정치 문화를 전복시킬 논리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뜻이다. 이런 것들이 한편에서 보면 일본이 기존 사회적 흐름을 존중하며 질서를 훨씬 더 잘 잡아가는 이유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 보면 기존의 정치 권력이 잘 교체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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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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