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청구권 문제 '최종 해결'…한국, '신뢰하기 힘든 나라'"
한국, "개인 '배상' 해결 안 돼…일본, '과거 잘못 사과 안 하는 나라'"
그러면서 아래와 같은 내용에 합의했다.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한일청구권협정 제2조 1항)
문제는 '청구권'의 내용이 무엇인지 세부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2차대전 승전 연합국이 패전 일본국과 전후 처리 문제를 합의한 '샌프란시스코조약'에서는 일본과 피식민국가간 재산, 채무 문제 등을 당국자들간 협의의 대상으로 남겨놓은 바 있다. 그 조약에 따라 한국과 일본은 국가와 국민간 청구권의 문제를 협의했고 이 문제가 위 협정문에서처럼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청구권의 내용과 관련해 두 나라의 인식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일이 발생했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 일본 기업에서 일했다가 임금을 받지 못한 한국인이 한일기본조약 타결 이후에 그 임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경우 이명박 정부 시절 고등법원에서 개인이 개인에 대해서, 개인이 기업에 대해서 받지 못한 임금에 대해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행위는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해 이와 관련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미루어 두었다. 그러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개인의 배상 요구는 정당하다는 최종 판결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본의 최고재판소(대법원)는 한일기본협정에 의거해서 개인의 청구권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이미 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법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이라고 간주했다. 모든 것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진작에 마무리되었는데 한국이 국내 정치적 이유로 뒤집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와 달리 한국의 법원은 식민지배 청산과 관련하여 국가 단위에서 '보상'은 받았지만 개인 단위의 '배상' 책임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입장이었다. 보상(補償)이 적법한 일로 손해를 입힌 경우에 갚아야 될 대가라면, 배상(賠償)은 불법적인 일에 따른 손해를 마땅히 물어주는 대가이다. 일본은 이른바 독립축하금까지 제공하며 마무리했던 한일청구권협정에 모든 것이 다 담겨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는 데 비해 한국은 개인 단위의 배상까지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차이가 명확했다.
이러한 미묘한 차이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2015년 12월 29일 일본으로부터 10억엔을 받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는 합의문을 발표하자 한국은 곳곳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고 반일감정도 다시 고조되었다. 직접적 피해당사자였던 위안부 할머니들을 제외한 정부의 선언은 무효라며 양국의 밀실 협약을 비판했다.
이와 달리 일본에서는 한국은 정부간 약속을 뒤집는, 상대할 수 없는 나라라는 혐한 인식이 커졌다. 더욱이나 싫든 좋든 중앙 권력의 결정을 인정하는 문화가 한국보다는 큰 일본인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 법원의 판결과 한국인의 반일 정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한국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이런 식으로 한일간의 관계가 계속 꼬이는 데에는 정치문화적 입장과 정서의 차이가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메이지의 그늘'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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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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